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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의 프레임] 비대면과 대면 사이, 사진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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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경일대 1학년 박채운, 손대호, 이신혜, 허남호 작품 (제공=조아조아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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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독설가로 꽤 이름을 날리는 편이다. 몇 년 전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에서, '식스틴'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나는 독설가로 회자됐다. 그래서 아직도 악성 댓글이 나를 따라다닌다. 아들을 둔 엄마로서 가끔 민망하고 미안하지만, 나는 나의 말들에 후회는 없다. 난 그때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 약이 되는,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독설이라고는 하나 나의 진심이 담긴 애정이었음에는 변함이 없다.


11년 차 교수인 나는 학교에서도 독설가로 악명이 높다. 처음 학교에 갔을 때 나의 지명도로 인해 수강 신청자가 정원을 넘어 분반해야 했다. 그러나 그 상황은 채 2년이 가지 못했다. 매주 촬영하고 작업물을 가져와야 하는 데다가 학생들의 수고와 노력에도 수업 시간에 돌아오는 건 독설들이었기 때문이다. 수강생 수는 팍 줄었고 내 수업은 인기가 없어졌다. 단지 몇몇 독하게 마음먹은, 졸업 전에 완성도 있는 작품을 꼭 남기겠다고 마음먹은 학생들만이 내 수업을 신청했다. 그래도 난 흔들리지 않았다. 나의 쓴 말들이 그들의 사진 인생에 기름칠을 해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나면서부터 다시 수강생이 늘기 시작했다. 졸업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내 수업을 꼭 들으라는 조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피가 되고 살이 됨을 졸업을 하고 필드에 나가보고 깨달았단다.

교수로 처음 학교를 가는 길에 결심했다. 인기 있는 교수가 되기보다는 이제 막 인생의 출발선에 서 있는 그들에게 쓴 약이 되는 선생이 돼야겠다고. 나는 사진 전공을 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석사나 박사 학위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랫동안 필드에서 쌓은 경험으로, 학생들이 작업을 통한 경험치로 그들 스스로 배워나가게 하는 것뿐이었다. 난 그저 그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주는 나침반의 역할만 할 뿐이다. 난 매주 촬영 과제를 냈다. 수업 시간에 만나 서로의 작업물을 보고 서로 '비평'하며 서로를 통해 배워나가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그것이 진정한 교육임을 믿었다.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다. 그것은 3이 될 수도, 100이 될 수도, 무한대가 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제2의 조선희나 제2의 누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사진가로서의 페르소나를 끌어올리는 것. 그것이 미래의 사진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사진의 테크닉이 어쩌고저쩌고…, 렘브란트 조명은 말이야…,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사진의 정통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에 얽매여 구시대적 발상에 머물러서는 이 시대에 사진가로, 아티스트로 살아남을 수 없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아이디어들을 어떻게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비주얼로 내놓을지, 콘셉트를 비주얼화하는 방법을 학생 스스로 도출해내게 하는 것. 그것이 교수, 조선희가 해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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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가 도래해 대면 수업은 불가능해져버렸다. 그렇다고 갑자기 이론 수업을 하며 뜬구름 잡는 수업을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교수가 많고,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진정성이 떨어지는 게 자명했다. 다행스럽게도 인터넷으로 화상회의를 하는 시스템이 있었고 난 그 방법을 택했다. 첫째 주에는 콘셉트를 도출해 촬영 계획을 발표하고, 둘째 주에는 작업물을 발표하고 비평한다. 대면 수업만 못하지만 90% 비슷하게 진행했다.

하루 8시간 컴퓨터 안으로 들어갈 정도로 들여다보며 입이 아플 정도로 떠들어야 했지만, 학생들의 발전적인 모습을 보는 것으로 보상은 충분했다. 그러나 늘 학기 마지막 주에 학생들의 파이널 작업물을 인화해서 여는 미니 전시회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코로나19로 생략하기에는 학생들의 소중한 경험의 기회를 빼앗게 되는 것 같아 고민이 됐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19 사태를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안고 살아가야 할 운명이고, 우리의 삶은 계속돼야 한다. 내 학생들의 사진 인생도 계속될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손세정를 사용하고 원하는 사람만 참석할 것! 그래서 내 스튜디오에 모여 미니 전시회를 열었다. 저학년들은 선배들의 작품을 보며 완성도와 디테일,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에 일관되게 톤 앤드 매너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배우고, 선배들은 후배의 작업을 보며 신선한 아이디어에 자극받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여전히 우리의 삶은 지속되니 더 이상 피하고 웅크릴 수는 없다. 삶의 습관을 바꾸고, 좀 더 조심하며 여전히 열심히 살아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리고 나 또한 사랑이 담긴 직설로, 가끔 독설가로 욕먹으며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내가 사는 방법이다.


조선희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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