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어디로 휘어질지 모르는 너클볼 닮은 '야구소녀'
최윤태 감독·이주영 주연 '야구소녀'
"야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여자든 남자든, 그건 장점도 단점도 아니에요."
영화 '야구소녀'에서 주수인(이주영)은 프로야구를 꿈꾼다. 경쟁력은 높지 않다. 볼 회전은 우수하나 최고 구속이 134㎞에 머문다. 고등학교 진학 뒤 성장이 멈춰버렸다. 프로구단들은 하나같이 외면한다. 야구부 박감독(김종수)과 어머니 신해숙(염혜란)마저 포기를 종용한다. 주수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상의 편견과 속단에 맞서겠다며 연습을 이어간다.
주수인이 체감하는 한계는 크게 두 가지다. 금녀의 벽과 정체된 야구 실력. 돌파구로 너클볼을 연마한다. 속도를 중시하는 야구의 기본 속성에 역행하는 구질. 공의 회전을 극도로 줄여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유발한다. 너클볼은 방향이 조금만 달라져도 힘에 큰 차이가 생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손에 익은 투수라도 일정한 제구를 유지하는데 애를 먹는다. 공이 휘지 않으면 타격 연습용 투구만도 못할 수 있다.
주수인의 고집스러운 도전은 어디로 휘어질지 모르는 너클볼과 닮았다. 너클볼을 휘어지게 하는 요인은 공의 솔기와 접촉하며 발생하는 난류. 솔기의 비대칭으로 힘에 불균형이 생기면서 공의 궤적이 변한다. 솔기가 있는 쪽에서는 공기 저항 때문에 작은 난류가 일어난다. 반면 매끈한 쪽은 공기를 부드럽게 통과한다.
주수인은 솔기 없는 면처럼 무난하게 살 수 있었다. 소프트볼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고, 어머니의 소개로 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솔기가 있는 삶으로 스스로 돌아선다. 프로야구 입성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부단히 노력한다.
장밋빛 미래는 기약하기 어렵다. 너클볼은 폭투가 많이 나오고 포수의 실수를 잦게 유발한다. 도루도 쉽게 허용한다.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불안을 포용할 수 있는 감독은 거의 없다. 기회가 먼저 주어지는 일도 당연히 드물다.
'야구소녀'는 판타지 같은 전개로 불투명한 앞날을 응원한다. 프로야구 경험도 없는 최진태(이준혁) 코치가 너클볼 스승을 자처하고 나선다. 너클볼은 그렇게 간단히 익힐 수 있는 구질이 아니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너클볼러 필 니크로는 평생 너클볼 연구에 매진했다. 뒤를 이은 팀 웨이크필드나 R.A. 디키는 니크로 등 너클볼러 선배들의 헌신적인 도움 덕에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현실 속 주수인들은 하나같이 숱한 좌절을 맛봤다. 너클볼을 앞세워 간사이 독립리그(일본 세미 프로리그)에 진출한 요시다 에리는 별 인상도 남기지 못한 채 어깨 부상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재미교포 제인 어는 KIA, 삼성, SK 등에서 유격수로 테스트를 받았으나 매번 쓴잔을 마셨다. 최고 구속 132㎞를 뽐냈지만 근력과 스윙 속도가 떨어져 타격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언론 매체들은 이들이 도전에 나설 때마다 '금녀의 벽'을 운운했다. 너클볼과 직구를 같은 자세로 던진다는 허무맹랑한 해석까지 내놓으며 남녀 대립 구도를 조장하곤 했다.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스타가 된 선수로 여자 프로골퍼 미셸 위를 꼽을 수 있다. 우수한 신체 조건(183㎝ㆍ70㎏)과 평균 비거리 300야드를 바탕으로 열세 살 때부터 남성 골퍼들과 대결했다. 컷오프 탈락 등 저조한 성적을 거듭했으나 남자대회 참가만으로 화제를 모았다.
남성 중심의 스포츠 영역에서 여성의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그 가치가 커지려면 남성 권력이 기획하고 구조화한 질서 자체를 거부하는 행보가 돼야 한다. 미셸 위의 성 대결에서 이런 성격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성이 상품화되는 기이한 현상으로 이어졌다. 주류 남성들은 도발적 여성성에, 주류 여성들은 남성 권력에 대항하는 로망에 각각 열광했다. 자기도 모르게 여성성만 강요당한 미셸 위는 결국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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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수인은 여자라서 프로구단들로부터 외면당한 게 아니었다. 실력이 부족해서였다. 프로야구가 아니라도 야구를 할 수 있는 무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는 남성과 대결을 끝까지 고집한다. 그 이유나 목적은 분명하지 않다. 악바리 같은 면면만 보여줄 뿐이다. 자기도 모르게 여성성을 강요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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