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부당소송금지법
AD
원본보기 아이콘


언론보도로 명예 등이 훼손된 경우 손해액의 3배를 위자료로 부과할 수 있는 내용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핵심으로 하는 이 개정안은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허위보도가 당사자뿐 아니라 그 보도를 보는 국민들에게까지 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필요성 자체는 인정된다.


이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 없이 법안 도입 배경과 목적애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의 언론통제 야욕',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악법'이라는 것이다. 물론 완전하게 틀린 주장은 아니다. 손해배상액이 대폭 상승한다면, 100%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 의혹 보도를 스스로 제한하는 위축 효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언론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중재위의 언론판결관련 보고서를 보면,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동안 언론 피해자의 승소율은 49.31%에 불과하다. 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에 81%가 찬성했다고 한다. 국민들 대다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언론에만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게 되면, 오히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만 혜택을 본다. 정치인ㆍ고위공무원ㆍ재벌 등 권력자들은 개정 언론중재법을 무기로 자신들에게 비판적 기사를 쓰는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 이미 201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된 언론소송의 손해배상액은 평균 1400만원에 이른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면 4000여만원이 넘는다. 비리를 저지른 권력자로부터 소송을 당하지 않기 위해 보도를 포기할만한 금액이다.

개정법으로 인해 언론이 권력과 싸우기가 힘들어졌다면, 그만큼 언론에게도 권력에 맞설 수 있는 무기를 보장해야 한다. 언론사도 권력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반소(反訴) 청구를 운용하는 것이다. 반소는 쉽게 말하면, 상대방이 소송을 제기한 경우 단순하게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억울하다"며 역공을 하는 소송을 의미한다. 언론에 대한 봉쇄소송이 제기되면, 소극적 방어 대신 적극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소에도 징벌적 손해배상금이 적용된다면 악의적 소송을 낸 사람도 수천만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할 수 있다.


부당한 언론 소송을 사전에 차단하고 통제할 수단도 필요하다. 기자들은 일단 소송이 제기되면 회사 눈치를 보며 소송을 대응해야 해서 권력의 구린 면을 파헤칠 여력이 없다. 특히 한 번 소송을 당하면 학습효과로 인해 추가 기사 쓰는 것이 두려워질 수도 있다. 이러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부당소송금지법'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영국의 부당소송금지법은 당사자가 합리적 근거 없이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해 악의적ㆍ지속적으로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민ㆍ형사절차금지명령이 발해진다. 법원의 허가 없이는 소송 제기가 불가능해지며 명단이 런던공보에 공시된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부당하게 소송을 제기한 자를 규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법원은 신청에 의해 소 제기 자체를 금지하는 사전소송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도 비슷한 취지를 가진 부당소송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국민 상당수가 지지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반대는 의미가 없다. 대신 악의적인 소송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 부당한 봉쇄소송을 사전적으로 차단하는 법안 도입이 더 필요한 것이다.

AD

허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