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훈의 돛단Book] 가난한 나라에 돈 퍼주기, 능사 아니다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外 '번영의 역설'
아프리카서 휴대전화 시장 개척해
24조원 규모 시장 창출한 '셀텔' 신화
'쏟아붓기' 지원으론 빈곤 탈출 불가
시장창조형혁신으로 소비자 만들어야
빈국의 부패, 상황 따른 차선책일 뿐
더 나은 시장 창조하면 자연 소멸해
아프리카 출신의 모 이브라힘은 1990년대 말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 휴대전화 통신망 구축 계획을 세웠다. 하루 벌어 먹고살기조차 버거운 가난한 이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할 여유나 있을까. 많은 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은행은 이브라힘이 세운 회사 '셀텔'에 투자하기를 꺼렸다.
그러나 이브라힘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정신으로 불모지를 일궜다. 전기 없는 곳에서 직접 전기를 마련하고 직원이 업무에 대해 모르면 직접 가르치기까지 했다. 몇 년 뒤 상황은 완벽하게 반전했다. 셀텔은 창업 6년 만에 아프리카 13개국에서 사업소를 꾸리고 고객 530만명을 확보했다. 최소 25센트의 선불카드는 대성공을 거뒀다.
셀텔의 성공 이후 많은 이동통신업체가 아프리카에 생겼다. 그 덕에 올해까지 일자리 450만개가 창출됐다. 이들 업체가 내는 세금만 205억달러(약 24조6000억원)에 이른다.
한편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에포사 오조모는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학자로서 자수성가한 그는 십여 년 전 '가난은 이제 그만'이라는 비영리 조직을 설립했다. 조직은 마련한 기금으로 물 부족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마을들에서 우물을 팠다.
하지만 한시름 놓게 된 마을 사람들의 기쁨도 잠시였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우물은 관리 능력의 부재로 망가진 채 방치됐다. 게다가 이를 고칠 기술자도 없었다. 5개 우물 가운데 지금 제대로 기능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두 사례는 번영이 지닌 역설적 측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동안 가난한 나라에 교육 시설을 짓거나 큰돈을 들여 철도를 깔고 선진사회의 제도를 그대로 도입해왔다. 하지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배워도 취직할 데가 없고 교통 인프라를 활용할 물류가 없는 데다 타국의 낯선 제도를 선뜻 수용할 이도 없었기 때문이다.
'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유명한 고(故)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쓴 '번영의 역설'은 사회가 번영하기 위해선 단순히 밀어붙이는 혁신이 아닌 끌어당기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시장 창조형 혁신'이 바로 그것이다. '번영의 역설'은 지난 1월 타계한 크리스텐슨 교수의 마지막 저서다.
시장 창조형 혁신은 비소비자를 소비자 대열로 끌어당긴다는 개념이다. 방법은 복잡하고 비싼 제품이나 서비스를 훨씬 더 간편하고 싸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당장 여유가 없어 삶의 개선 수단을 구매하지 못하는 비소비자가 소비자로 바뀌면 인프라와 일자리도 자연스레 '끌어당겨진다'.
셀텔 덕에 이를 광고ㆍ유통하는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셀텔은 번 돈으로 직원ㆍ지역사회를 위한 보건ㆍ교육 인프라도 구축할 수 있었다. 종국에는 사회 문화를 바꿀 수 있는 힘까지 생겼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18세기에 아프리카 앙골라보다 가난하던 미국이 발전할 수 있던 것도 시장 창조형 혁신 덕이라고 말한다. 싱어 재봉틀, 이스트먼코닥의 필름 카메라, 포드의 양산형 자동차 '모델T'가 대표적 예다.
재봉틀이 양산되자 섬유산업은 물론 옷을 보관할 수 있는 가구산업도 덩달아 발전했다. 코닥은 누구나 쉽게 카메라로 찍어 현상을 맡기는 시스템 개발로 1960년대 후반 고용 인력을 10만명이나 거느리게 됐다. 모델T는 자원 개발, 도로 건설, 숱한 일자리 창출의 일등 공신이었다. 모델T를 탄생시킨 자동차 양산 시스템은 미국 너머 세계 전역으로 퍼져 세계적 번영도 가져왔다.
그렇다면 부패와 비리가 만연한 제3세계 빈국에서도 시장 창조로 성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어떻게 하면 부패를 근절할까"란 질문에서 "어째서 부패는 이토록 끈질길까"라는 질문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부패는 더 나은 선택지가 별로 없는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더 나은 길, 제2의 해결책, 유용한 방편일 뿐"이다.
시장 창조로 더 나은 대체물이 나온다면 부패의 효용성은 떨어진다. 이는 투명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물꼬를 튼다. 일례로 카세트 테이프를 쓰던 과거에 '믹스 테이프' 같은 불법 음원이 판쳤다. 하지만 최근 스포티파이나 넷플릭스 같은 혁신적인 온라인 음원 서비스시장이 창조됐다. 불법 온라인 유통 경로를 뒤지기보다 콘텐츠 서비스의 유료 구독자가 되는 게 오히려 싸게 먹힌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한국의 사례도 든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에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정부와 대기업의 유착 등 부패가 만연했다. 그리고 30여년 뒤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부패와 관련된 혐의로 탄핵됐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시민을 위한 번영을 창조하는 혁신에 사회가 더 많은 투자를 할 때 부패와 맞서 싸우는 여러 체계는 비록 느린 속도지만 뚜렷하게 개선된다"고 말한다. 그러니 오늘날 부패한 다른 여러 나라도 한국처럼 더 투명한 사회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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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 전역이 사회ㆍ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다. 번영은커녕 '원상복구'가 시급할 정도다. 하지만 지금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세상 어딘가에는 시장 창조 혁신의 기회가 숨어 있다. 이를 찾아 다시 번영의 엔진부터 켜는 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과제다.
(번영의 역설 -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 에포사 오조모 , 캐런 딜론 지음, 이경식 옮김,부키,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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