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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대표질환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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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같은 부위의 통증이라도 지금은 예전에 비해 병명이 많이 세분화되었다. 불과 몇 개의 질환으로 진단하고 치료하였던 시절도 있었다. 허리가 아프면 디스크, 배가 아프면 장염, 머리가 아프면 고혈압 이런 식으로. 하지만 지금은 허리 부위만 해도 척추관협착증, 추간공협착증, 척추분리증, 척추전방전위증 등으로 병명이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몇몇 대표질환이라 여겨지는 병명에 자신을 묶어두는 환자가 많다. 요통으로 내원한 환자는 진료도 전에 협착증인지를 묻는다. 어깨가 아픈 분은 대부분 자신이 회전근개 파열이라 생각한다. 무릎이 아픈 환자는 연골이 닳아서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며 진통제 이상의 치료를 체념한다.


환자가 자신의 통증을 이런 대표질환으로 단정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우선 간접적인 의료정보 제공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진료 과정도 거치지 않고 인터넷을 비롯해 매스컴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로 자신의 병을 자가진단하고는 병명을 결정해버린다. 두 번째로는 복수의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같은 진단을 받은 경우, 환자는 그 진단이 맞다고 여기게 된다. 특히 큰 병원의 저명한 의사로부터 들은 말일수록 신뢰도는 높다. 세 번째로는 가시적인 근거가 제시되었을 경우이다. 사진으로 추간판탈출이 보이거나 연골이 닳아 좁아진 무릎 관절이 보이면 환자 뇌리에 그 질환이 각인된다.

필자가 위의 경우를 '덫'이라고 여기는 데는 까닭이 있다. 어쩌다가 대표질환 치료를 통해서 심각한 상태였던 환자들이 낫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런데 대표질환으로 치료가 힘든 환자가 스스로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적극적인 진단과 치료를 꺼릴 때가 있다. 조금만 다른 원인을 찾아보면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인데 치료가 힘든, 잘 알려진 질병(대표질환)으로 잘못 각인된 환자들이 그렇다. 그런 경우는 안타깝지만 환자 스스로 덫에 걸린 경우라 하겠다.


스스로의 고정관념에 갇힌 환자는 치료가 어렵다. 일단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어디가 불편한지 표현하지 못하고, '제가 4, 5번 디스크가 있어서요'라고 얘기한다. 스스로의 증상 대신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심지어 '디스크가 아파서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런 환자는 재진단 자체를 싫어한다. 이미 여러 곳을 들렀고, 큰 병원에서 비싼 돈까지 들여 사진까지 찍어서 디스크로 판명되었다며 이학적 검사 또한 받으려 하지 않는다. 단지 거기서 했던 동일한 치료만 해달라고 우긴다.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처럼 진단은 환자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의료진이 여러 번 재고해야 한다. 더불어 또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어두고 상세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의사도 아는 병이 적으면 편하다. 치료 방법을 다양하게 알지 못하면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그 또한 편하다. 그러나 단연코 의사는 그러한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의사가 기계론적 입장으로 환자를 몇 가지 대표질환에 묶어버리면 환자는 그 프레임에 갇혀 빠져나올 수 없다. 일차적으로는 의료인의 잘못이지만, 환자 또한 대표질환의 프레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특히 대표질환 치료의 예후가 나쁠수록 더욱 그러하다.

박용석 행복마취통증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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