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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건너다보면 빨간불 돼요" 노인·장애인에게 가혹한 보행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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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자 절반 이상 '고령자'
보행 신호 시간, 장애인·고령자에 턱없이 부족

3일 서울 강서구일대의 한 신호등에서 보행자들이 신호를 건너고 있는 모습/사진=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

3일 서울 강서구일대의 한 신호등에서 보행자들이 신호를 건너고 있는 모습/사진=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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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슬기 인턴기자] "거동이 불편하거나 노인이 건너기엔 횡단보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죠"


교통사고 사망자 절반 이상이 고령자인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보행 신호가 고령자를 비롯한 거동이 불편한 보행자에게 턱없이 부족한 시간을 제공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중 53.6%가 65세 이상의 고령자다.


특히 서울지방경찰청(서울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까지 서울 지역에서 일어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모두 178명이고, 이 중 보행자가 62%인 110명이이다. 110명의 보행 사망자 가운데 만 65살 이상 노인 비율은 절반에 가까운 48%로 집계됐다.


3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신호등 앞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74세 장 모 씨는 "이 근방에 신호등이 총 3개가 있는데 그중 1개는 신호가 길고 2개는 짧다. 기존에는 (보행 신호 시간이) 더 짧았는데 요즘엔 좀 늘어난 것 같다"라면서도 "길게 하려면 전부 다 길게 해야 하는데 한 개만 늘려줘서 여전히 보행에 불편해하는 시민들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강서구 일대의 한 사회복지관 앞 보행 신호를 허겁지겁 건너던 82세 이 모 할머니는 "매일 신호를 건너면서 다리가 아프다. 빨리 걸으려고 해도 힘에 부치고 신호를 건너고 난 이후에는 제 자리에 멈춰서서 숨을 고르고 다시 이동하곤 한다"고 토로했다.


또 전동 휠체어를 타고 신호를 건너던 67세 최 모 씨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나 같은 경우 빠르게 지나가면 되기 때문에 보행 신호의 시간이 짧은 게 큰 문제가 되진 않지만, 일반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매번 신호 시간 내에 다 건너지 못한다. 차들도 휠체어가 횡단보도를 다 건넜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지나가려고 해서 보기에도 위험한 장면을 여럿 목격했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보행 신호 시간이 모자라 도로를 가로로 건너는 보행자의 모습/사진=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

사진은 보행 신호 시간이 모자라 도로를 가로로 건너는 보행자의 모습/사진=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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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노모를 모시고 이동하던 77세 윤 모 씨는 "보행 신호 시간이 너무 짧다.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이 신호를 지키지 않고 차가 없으면 무단횡단을 하거나 빨간불인데도 도로를 건너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신호 시간이 길어 어르신들이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면 '어르신들이 위험하게 도로를 건너지 않으셔도 될 텐데'라는 생각을 매번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거동이 불편한 일부 보행자들은 신호등이 빨간불인데도 불구하고 도로 밖으로 나가 신호를 건널 채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신호를 받고 우회전을 하는 차량과 이들의 거리가 불과 1m도 채 되지 않아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양동 일대에서 만난 다리를 절던 행인 A 씨는 "신호가 너무 빨리 끝나고, 빨간불이 되면 차들이 경적을 울려 위협했던 경우를 여러 번 겪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초록불이 들어오기도 전에 길을 건널 준비를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A 씨는 "이 동네에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은데 구청이나 시에서 이런 점을 해결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3일 서울시 강서구 일대에서 거동이 불편한 보행자가 보행 신호의 시간 내에 건너지 못해 보행을 서두르고 있는 모습/사진=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

3일 서울시 강서구 일대에서 거동이 불편한 보행자가 보행 신호의 시간 내에 건너지 못해 보행을 서두르고 있는 모습/사진=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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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휠체어 등을 이용하는 보행자와 이들의 보호자들은 빨리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를 포함한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는 경우도 허다했다.


휠체어를 이용해 도로를 건너던 박 모 씨는 "횡단보도 위를 보행 신호 시간 내에 건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짧아서 매번 가로질러 갈 수밖에 없다"라며 "조금만 늦게 건너도 차들이 빵빵거리고 위협을 해서 화가 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무단횡단까진 아니지만 횡단보도를 온전히 건널 수 없는 우리의 입장도 생각해 달라"라고 하소연했다.


서울청 신호운영실 관계자는 고령자를 포함한 교통 약자를 위해 보행 신호 시간을 정하고 있지만, 사회적인 논의 등에 따라 시간을 더 부여할 수 있는 지침 등을 마련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보행 신호의 길이는 경찰청에서 만든 교통신호 매뉴얼을 통해 적용된다. 올해는 해당 기준이 완화되어 보호구역 내에 적용되는 시간이 늘어났다"라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의 경우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는 지역인 전통시장, 병원 등에는 보호구역이 아니더라도 보행 신호를 보호구역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서 보행 신호를 부여하고 있다. 기준보다는 많은 시간을 부여하고 있으며 경찰청 차원에서 지침을 마련해 보행 신호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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