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국식 오너경영'이 중요한 변곡점에 섰다. 중심축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 삼성을 둘러싼 논란을 사과하며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과 부친 이건희 회장에 이어 본인까지 3대째 이어온 삼성의 대물림 경영의 종식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껏 한국 재계가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이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파격적인 이 발언 이후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처럼 오너의 기업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집단지배구조 체제로의 전환 방안을 모색 중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재단을 통해 100여개의 계열사를 가족이 공동 소유하고 있지만 계열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일임하고 있다. 1856년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을 창업한 이래 160년간 5대째 가족경영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스웨덴 국민들에게 최고의 기업으로 칭송받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 부회장 역시 발렌베리가의 비결을 본 따 '뉴 삼성' 지배구조의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재용식 뉴 삼성을 '못 믿겠다'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사과 자체가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감형을 노린 꼼수란 비판도 부지기수다. 삼성으로선 이같은 시선이 억울할 수 있겠지만 어찌됐든 자업자득이다. 사과 자체가 법원의 권고로 만들어진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의 요청을 받아들여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냉정하게 따져볼 부분은 있다. 만약 이 부회장이 사과하지 않았다면 양형을 낮추기 위한 꼼수란 비난은 받지 않았을까? 아니라고 본다. 준법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인 만큼 삼성이 준법위를 사법적 판단을 위한 형식적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는 냉소가 나왔을 게 분명하다. 그럼 사과문을 통해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세세히 공개했다면? 이 역시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었을테다. 재판정에 대한 노골적인 구애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이번 사과는 준법위 권고에 따른 답변보다는 대기업, 대주주의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 강화란 시대적 요청에 대한 비전 제시라는 점에 더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준법위가 지난달 사과 권고안을 발표했을 때만해도 이 부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 것이란 예상을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앞서 삼성은 지난해 말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혐의로 기소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부사장이 법정 구속되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명의로 간단한 입장문을 냈다. 이번 역시 비슷한 형태의 사과문이 나올 것이란 짐작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은 직접 나와 본인이 작성한 대국민 사과문을 읽으며 세번이나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러면서 향후 있을 수 있는 4세 승계 문제에 대한 선을 분명하게 긋고 국격에 어울리는 삼성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지배구조를 삼성 특유의 '초격차' 전략에 맞춘 최고 수준으로 바꿔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이는 삼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대적 요청과도 맥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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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변화를 위한 삼성의 워밍업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약속 이행이다. 과감히 한국식 오너경영과의 종식을 결단한 것처럼 강력한 실천력을 바탕으로 삼성만의 새로운 지배구조를 완성하길 바란다. "삼성그룹의 어제(6일) 선언을 사법적 회피를 위한 얕은 눈속임으로 절대 보지 않는다. 대한민국 경제가 새 시대로 나아가는 거대한 전환점으로 기록되길 기대한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가 7일 임기를 마치기 직전 주재한 정책조정회의에서 한 이 발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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