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경영 분리 첫발 뗀 삼성…'한국판 발렌베리'로 가나
선진국처럼 경영방식 변화 결단
경영은 전문경영인에 일임하고 이 부회장은 인재영입 관리, 투자 등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
"오래전부터 생각해와, 이사회 독립·투명성 강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서초동 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무노조 경영, 시민사회와의 소통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이창환 기자, 이기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중단을 선언하면서 '뉴삼성'의 첫발이 시작됐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힘에 따라 스웨덴 발렌베리가를 벤치마킹한 'JY(이 부회장)식 뉴삼성' 경영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이 장기적으로 전문경영인에게 계열사 경영을 일임하고 본인은 한 발 물러나 핵심 인재 영입과 배치 등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층 올라간 대한민국 국격에 어울리는 삼성으로 변신시키겠다는 게 이 부회장의 구상이다.
◆삼성식 집단지배구조 선보이나= 이 부회장이 6일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은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는 "그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며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 부회장으로 3대에 걸쳐 이어진 승계식 경영을 끝내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뉴삼성으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다. 이 부회장은 슬하에 1남(20) 1녀(16)를 두고 있는데 자녀들이 지분을 물려받을 수는 있지만 경영권에서는 한발 멀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은 대물림 경영을 끊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오래전부터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을 해왔다"며 "경영 환경도 결코 녹록지 않은 데다 저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저 이후의 제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해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2018년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한 데 이어 올해 처음으로 사외이사에게 의장직을 맡긴 것에도 이 부회장의 이 같은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사회의 투명성과 독립성 강화를 위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향후 경영 방식 변화를 꾀할 것으로 본다. 대표적 사례가 스웨덴 최대 기업집단인 발렌베리그룹이다. 에릭슨, 스카니아 등을 소유한 발렌베리 가문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회사를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발렌베리는 전문경영인들에게 각 자회사의 경영권을 독립적으로 일임하고, 지주회사 인베스터를 통해 자회사들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한다. 가문이 소유한 발렌베리재단이 통신장비(에릭슨), 가전(일렉트로룩스), 중공업(ABB), 금융(SEB), 스카니아(건설장비), 아스트라제네카(제약) 등 약 100개 기업을 지배하는 집단지배구조 형태로 운영되는 게 특징이다.
이 부회장이 구상하는 삼성의 미래 모습도 이와 흡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그룹은 이 회장 때부터 발렌베리가와 인연이 있다. 이 회장은 2003년 스웨덴 출장 때 발렌베리가를 만나 경영 시스템과 기업의 사회적 역할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부회장도 2012년에 이어 지난해 말 방한한 발렌베리 회장을 만나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발렌베리 외에도 미국의 포드, GM, 유럽의 레고, 보쉬 등 선진국의 다수 기업이 이미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대규모 상속세를 피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며 기업 경영의 시대적 흐름이라는 평가도 있다. 미국의 워런 버핏도 버크셔해서웨이를 통해 많은 기업을 소유하고 있지만 경영은 전문가에게 일임하고 투자와 인력 관리 등에만 집중한다.
◆무노조 경영 폐기…국민의 삼성 만든다= 뉴삼성은 무노조 경영 폐기와 시민사회 소통 강화 등을 통해 사회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은 코로나19에 잘 대처해 국격이 높아진 한국 사회에 어울리는 삼성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최근 2~3개월에 걸친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저는 진정한 국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꼈다"며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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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부회장의 사과문을 받아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7일 오후 2시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5차회의를 열고 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입장을 내놓을 예정이다. 준법감시위가 그간 삼성에 대한 시민사회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만큼 경영권, 노조, 시민사회 소통 등에 관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내놓으라고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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