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진작하겠다며 정부가 만든 긴급재난지원금을 대통령이 제일 먼저 반납한다는 건 매우 이상한 일이다. 제도의 취지와 무관한 그의 결정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뻔하다. 이미 고위 공무원 몇몇이 반납 의사를 밝혔고 여당 의원(및 당선자), 지방자치단체장과 기관장, 정부에 잘 보일 필요가 있는 기업들이 뒤를 잇는다. 그들 모두 '살 만하니 좀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라는 선의를 밝히고 있는데, 그럴 바에야 왜 70% 국민도 아니고 100%로 확대했는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는 엄밀히 말해 '기부'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내가 받지 않은 돈은 대체 어디로, 누구에게 가는가. 나랏빚을 갚는 데 쓰이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이웃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자발적이든 아니든 지급되지 않은 재난지원금은 고용보험기금이라는 곳으로 들어가 고용안정 대책 사업의 재원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국가 파산만은 막아보자는 취지의 '금 모으기 운동'과도 다르다. 물론 고용보험료 인상을 억제하는 좋은 효과는 있다. 그래도 내가 사용처를 지정한 것도 아닌 만큼 반납이나 사양 정도로 부르는 게 나을 것 같다.

대통령이 나서서 반납(그는 굳이 기부라고 한다)을 지시한 것이 적절치 않다는 비판 여론이 나름 있다. 그러자 대통령은 지난 4일 참모 회의에서 '강요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사장이 직원들에게 했다는 유명한 말, '알아서 시켜, 나는 짜장면'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게 끝도 아니다. 대통령은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건 좋은 일'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혹시나 해서 다시 말하는데, 잘 생각하고 주문해'로 들린다.


대통령이 쏘아 올린 반납의 공은 공무원을 거쳐 대기업ㆍ공기업ㆍ유명인을 지나 점점 그 크기와 속도를 더해갈 것이다. 이 물결을 거스르는 사람들은 모범시민 대열에서 제외될 수 있음에 유의하라. 이윽고 '반납이 애국'이란 공식은 상식 혹은 신념으로 자리 잡을지 모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사투를 벌이는 대구 의료진을 위해 써달라며 야간근로ㆍ연차수당, 식대까지 포함된 한 달 치 급여 223만3320원을 기부한 65세 경비원의 소식을 다룬 아시아경제 기사에 한 네티즌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기부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2인 가족으로 긴급지원금 60만원을 받을 테다. 지금이라도 반납 계획을 철회하고 영부인과 30만원씩 들고나가 즐겁게 쇼핑하고 외식도 하길 고언한다. 일부를 떼어 적절한 곳에 '정말' 기부하는 것도 좋겠다. 필자는 4인 가족이라 100만원을 받는다. 가계에 도움될 정도의 금액이긴 하지만 그 돈 없어도 당장 사달이 나진 않는다. 내 100만원이 어떤 절실한 10가구에 10만원씩 전달되는 구조라면 적극적으로 가족을 설득해보겠다. 그러나 '나도 국민이니 25만원은 내 것'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고용보험기금의 중요성을 설파해봐야 별 도움은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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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필자는 결심했다. 이 돈을 반납하지도, 사양하지도 않기로.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제 몫을 챙겨주기로. 이참에 '착한 소비'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볼 기회도 갖기로. 25만원을 다 소비한 후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샀고 먹었으며 왜 그곳을 선택했는지 밥상머리에 앉아 이야기해볼 작정이다.


물론 반납을 결정한 이들의 생각도 존중한다는 말을 굳이 남긴다. 다만 그것이 강요된 짜장면이 아니기를 바랄 뿐. 그래서 필자가 소속된 언론계에도 한 가지 제안을 해보려 한다. 어떤 부처나 지자체가, 기업이, 유명인이 재난지원금을 기부하겠다는 계획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언론사에 배포한다면 그 기부의 진정성을 존중해 '보도하지 말자'라고. 원래 기부란 것이 조용히 할 때 더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행여 '왜 기사가 안 나오나요. 우리가 기부한다는 걸 그분들이 알아야 하는데, 기사 좀 크게 부탁합니다'라는 전화가 언론사로 쇄도하는 일만은 없기를.

신범수 사회부장

신범수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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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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