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물값, 기름값, 콘탱고와 무대뽀
[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물보다 석유가 싼 시대. 원체 유가가 떨어지다 보니 언론에서 자극적으로 제목을 달았나 싶지만 실제로 국제 유가를 기준으로 하면 대형 마트에서 파는 생수 값보다 싸다. 1배럴이 158.9리터이니 배럴당 20달러로 쳐도 원유 가격은 1리터에 155원 수준(환율 1232원 기준)이다.
국제 유가 폭락에 나타난 이 기현상에 투자자들이 들끓고 있다. 특히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다는 소식은 관심이 없던 투자자들의 귀도 솔깃하게 만들었다. 파생상품 투자는커녕 주식투자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지인들조차 “지금 원유 관련 상품을 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의할 정도다.
고백하자면 WTI 선물가격 마이너스 소식엔 필자도 마음이 흔들렸다. ‘폭락만큼 좋은 기회는 없다’는 투자 격언을 생각하면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상황은 분명 기회처럼 보였다. “설마 이런 이상 가격이 지속되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 국내 증시가 폭락할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이 됐다.
하지만 현물과 달리 파생상품의 기초가 되는 선물은 대부분 ‘만기’라는 게 있다. 지난 20일 마이너스 37달러까지 떨어졌던 WTI 5월물의 만기는 지난 21일이었다. WTI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은 5월물은 만기가 됐으니 6월물로 교체를 해야 한다. 이를 롤오버(Roll-over)라고 하는데 문제는 6월물 가격이 5월물 가격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이처럼 만기가 되는 선물가격보다 새로 사야 하는 선물가격이 높은 상태를 콘탱고(contango)라고 하는데 이럴 경우 롤오버 비용이 발생한다.
문제는 지금처럼 만기가 된 선물가격이 워낙 많이 폭락해 그 가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슈퍼 콘탱고 상태일 때다. 한 증권전문가는 “WTI 5월물이 마이너스로 내려가기 직전 달 롤오버 비용은 15~20%였다. 지금 같은 경우는 상품에 따라서는 30% 넘게 롤오버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발생한 롤오버 비용은 고스란히 상품가격에 전가된다. 국제 유가가 다시 상승한다고 해도 이렇게 추가된 비용을 감안하면 정작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연초 국제 유가가 30% 반등할 때 미국에 상장돼 있는 원유 가격과 연동된 상장지수펀드(ETF)의 수익률은 불과 5%였다. “언젠가는 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기다린다고 무조건 수익이 나는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달 폭락장에서 용감하게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은 실제 수익을 제법 냈다. 본질가치 대비 지나치게 폭락한 주가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투자 덕이었다. 주식에 대해 잘 몰라도 삼성전자가 청산가치 수준으로 떨어지고, 국내 1위 은행을 둔 금융지주사 주가가 청산가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니 사야할 때라는 이들의 투자전략은 단순하지만 투자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품구조가 전혀 다른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를 이같이 해서는 곤란하다. 가격변동이 심한 파생상품은 일반 투자자의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투기 상품에 가깝다. 원유 ETF와 상장지수채권(ETN)에 투자하는 이들은 대부분 길어야 하루 이틀의 등락에 베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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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장에 단지 싸보인다는 이유로 참여하는 것은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무대뽀’ 정신일 뿐이다. 무대뽀라는 말은 일본 전국시대 나가시노 전투에서 당시 최강의 기마군단이었던 다케다 군이 오다 군의 조총부대 앞으로 돌격을 감행하다 궤멸되다시피 한데서 유래했다. 이달 들어 개인들의 코스피시장 순매수 1위 종목이 KODEX WTI원유선물(H)라는 점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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