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8년 5월22일 위화도 회군한 요동 원정군, 6월3일부터 개경에서 최영과 전투
선봉 류만수 패배에도 이성계 느긋하자 개경 수비군 병력, 조민수 좌군 막기에 집중
이성계 방어 소홀해진 숭인문 쉽게 통과, 좌군도 퇴각 멈추고 협공해 최영군대 괴멸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교수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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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년 이성계는 위화도를 출발했다. 5월22일 회군하기 시작한 이성계는 6월1일 개경에 도착해 3일 최영과 본격적인 전투를 벌였다. 요동 원정군은 회군해 개경 외곽에 진을 쳤다. 이성계가 이끄는 우군은 개경 동쪽 숭인문(崇仁門) 밖에, 조민수가 이끄는 좌군은 개경 서쪽 선의문(宣義門) 밖에 주둔했다. 요동 원정군은 개경 수비군보다 많은 병력과 물자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개경 함락은 쉽지 않았다.


개경은 나성(羅城), 궁성(宮城), 황성(皇城) 등 3중 구조로 돼 있었다. 나성은 북쪽 송악산(489m), 서쪽 오공산(204m), 남쪽 용수산(177m), 동쪽 덕암봉(108m)과 부흥산(156m)의 능선을 활용해 쌓은 것이다. 동서 길이는 5.2㎞, 남북 길이는 6㎞, 전체 둘레는 23㎞에 달했다. 성벽 높이는 8.1m, 두께는 3.6m였다. 금강석처럼 단단하다는 의미로 금강성(金剛城)이라고도 불렸다. 1218년 요의 잔당 금산왕자(金山王子)가 서해도와 충청도까지 침입했지만 개경은 함락당하지 않았다.

6월3일 요동 원정군의 개경 총공격이 시작됐다. 우군은 숭인문을, 좌군은 선의문을 공격했다. 그러나 최영의 역습으로 모두 패하고 말았다. 이때 이성계는 류만수를 선봉으로 내세워 공격하게 했다. 하지만 그의 패배를 예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류만수가 출발할 때 이성계가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만수는 눈이 크고 광채가 없어 담이 작은 사람이다. 이번에 반드시 패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그렇게 됐다. 그때 이성계는 안장을 내려 말을 풀어놓고 있었는데 류만수가 도망해 돌아왔다. 좌우의 부하들이 그것을 보고했으나 이성계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여전히 장막 안에 누워 있었다. 그래서 부하들이 재삼 보고한 후에야 서서히 일어나 식사를 한 뒤에 안장을 갖추고 말을 준비하라고 명했다."

이성계에게 관상으로 장수를 보는 안목이 있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군 사령관으로서 패하리라 뻔히 알면서도 류만수를 선봉으로 내보냈다는 사실에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선봉은 가장 신뢰하고 능력이 탁월한 장수에게 맡기는 게 보통이다. 전투 초기 기선 제압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선봉이 무력하게 패하고 돌아오면 본대의 사기가 저하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패배할 관상인 장수를 선봉으로 내보낸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더 이상한 점은 류만수가 패하고 돌아왔을 때 보인 이성계의 대처 방식이다. 이성계는 말안장을 풀어놓은 상태에서 별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화급한 전장에서 장수들의 패전 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여유를 부린 것이다. 게다가 출정 준비는 식사 후 이뤄졌다.


이어지는 '고려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성계가 숭인문으로 들어가서 좌군과 호응해 진군하니 성을 지키던 군사들이 아무도 반항하는 자가 없었다"고 돼 있다. 사서에 아무 저항도 없었다고 기록돼 있으나 이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식 묘사일 가능성이 크다. 앞서 류만수와 전투를 벌인 수비군들이 있었다. 따라서 저항이 전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류만수의 패배와 이성계의 입성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앞서 선봉이던 류만수가 패했다지만 숭인문 밖에는 이성계의 본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당연히 숭인문 수비군은 이성계 본진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류만수가 패해 돌아올 즈음 이성계는 말의 안장까지 풀어놓음으로써 출정을 준비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에 숭인문 수비가 다소 이완되면서 류만수의 공격 때보다 훨씬 적은 병력이 방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성계가 '숭인문으로 들어가 좌군과 호응했다'라는 사실에서 조민수의 좌군이 먼저 선의문을 통해 나성에 진입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요동 원정군의 좌우군은 동시에 나성을 공격했다. 서쪽의 좌군은 전력을 다해 선의문 공격에 나서 나성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동쪽의 우군은 선봉이 패해 달아나버렸다.


병력 부족에 허덕이던 수비군은 동쪽 이성계군이 공격 태세조차 갖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 뒤 동쪽의 수비 병력 상당수를 이미 뚫려버린 서쪽 방어로 돌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 틈에 이성계는 방어가 소홀해진 숭인문을 순조롭게 통과해 나성으로 진입할 수 있던 것이다.

[이상훈의 한국유사] 위화도회군 이어 개경 함락까지…조선 창업의 잘짜인 각본이었다 원본보기 아이콘

이와 관련된 설화가 있다. 이성계와 밭 가는 노인의 대화 내용이다. "동문은 열렸는데 동문으로 안 들어가구 다른 문으루 들어갈랴구 애쓰니 그 미련허지 않으냐? 인제 그거여. 아 동문으로 들어오니깐두루 동문은 안 닫혔어. 그래 동문으로 들어가서 나랄 조롱하는 거지. 나랄 내놓으라구." 이 설화에서 당시 나성 서쪽 선의문으로 공격이 집중돼 동쪽 숭인문 방어가 허술하던 정황을 짐작해볼 수 있다.


최영의 개경 수비군은 최초 나성 방어에 성공했다. 이후 영의서교(永義署橋)에서 조민수가 이끄는 좌군을 공격했다. 영의서교의 구체적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조민수가 서쪽 선의문을 통해 나성에 진입한 점으로 볼 때 선의문과 남산(南山) 사이의 교각이 아닐까 싶다. 개경 수비군은 앞서 요동 원정군의 좌우군을 물리친 뒤 다시 영의서교에서 좌군 공격에 나섰다. 만만치 않은 군사력을 보유했던 듯하다.


당시 개경 수비군은 여러 도(道)의 군사를 징발해 원조하게 했다. 그리고 모은 수레로 골목 입구를 막아 방어 태세를 갖췄다. 게다가 조민수 등의 관작을 삭탈하고 거리에 방(榜)도 붙였다. 여러 장수를 잡는 자에게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큰 벼슬과 상까지 내리겠다고 포고한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요동 원정군을 상대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지휘 체계 정비로 군심을 안정시키고자 노력했다.


개경 수비군은 선의문 너머로 들어온 조민수의 좌군을 공격하며 뒤쫓았다. 이때 숭인문으로 진입한 이성계의 우군이 선죽교를 지나 남산을 점령해버렸다. 남산은 최영 휘하의 안소가 방어했으나 주력군 이탈로 이성계의 우군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조민수의 좌군이 최영 부대에 쫓긴 것은 최영 부대의 강한 전투력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성계의 남산 점령을 위한 의도적 행동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성계가 점령한 남산은 해발 103m에 불과했다. 하지만 개경 중심에 위치해 개경 분지 전체를 감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UN)군의 개성(개경) 탈환 전투에서도 개성 남산 점령으로 개성 시내 전체를 통제할 수 있었다.


개경 전투 당시 조민수의 좌군은 흑색 대기(大旗)를 앞세우고 영의서교로 진군하다 최영의 군대에 쫓겼다. 이때 이성계의 우군은 황룡 대기를 앞세우고 남산에 올랐다. 우군은 남산 점령 후 북소리를 크게 울렸다. 이로써 요동 원정군의 좌우군에는 사전 협의된 신호 체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남산에 이성계의 황룡기가 나부끼고 북이 울리자 조민수는 퇴각을 멈추고 공세로 전환했다. 이성계의 우군은 남산에서 내려와 최영 군대의 배후를 치며 협공했다. 최영이 이끌던 개경 수비군은 궤멸됐다. 최영은 화원(花園)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최영은 체포돼 여러 곳으로 유배되다 개경에서 참수당했다. 이성계와 다른 길을 걸은 고려 말 불세출의 영웅은 그렇게 사라졌다.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의 사전 준비와 과감한 결단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회군의 마지막은 최영이 이끄는 개경 수비군과 맞닥뜨리는 것이었다. 이성계는 성공적인 기만·견제 작전으로 만만치 않은 최영의 군대를 무너뜨렸다.


그때까지 몽골·여진·홍건적·왜구 등과 전투하면서 패배를 모르던 이성계는 회군해 개경 전투에서도 승리했다. 결국 이성계는 고려 수도 개경 함락으로 조선 창업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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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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