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2003년 한은법 개정 조율한 조윤제…'따뜻한 시장주의자'
조윤제 한국은행 신임 금융통화위원
주미대사 거친 총재급 금통위원
코로나19 사태 맞아 중앙은행이 가보지 않은 길 위에 서다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2003년 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을 놓고 치열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 법 개정을 통해 한국은행 부총재는 금융통화위원 당연직이 됐고, 증권업협회 금통위원 추천권은 폐지됐다. 민간 추천권이 하나 사라지고, 한은 쪽 금통위원이 한 명 더 늘어난 것이다. 당연히 한은에선 권한이 커지기 때문에 국회에서 법안을 발의하자마자 환영했지만,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 듯 했는데, 어느 순간 양측이 만남을 갖고 단일안을 만들었다. 약 4개월간 끌던 한은법 개정안은 결국 그 해 여름에 통과됐다. 이 가운데에 있던 인물이 바로 21일 취임한 조윤제 신임 한은 금통위원(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경제보좌관)이다. 금통위 구성을 바꾸는 작업을 조율했던 인물이, 17년만에 금통위원으로 한은에 온 것이다.
당시 청와대에 파견을 나가 있었던 차현진 한은 인재개발원 교수는 "관료들과 한은 사이에서 합리적으로 한은법 개정안에 대해 조율하는 역할을 했던 모습이 인상깊었다"며 "경제보좌관으로서 한은과 정부의 가교 역할을 잘 하는 모습을 보고 한은에 애정과 관심이 크다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한은과의 인연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위원의 이름이 익숙한 이유는 그가 직전(2017~2019년) 주미대사를 역임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화를 시작해 북미 실무협상 진전상황에 대해 브리핑을 여러 번 하며 언론에도 자주 등장했다. 따라서 '주미대사'로서의 이미지가 있지만, 예전부터 조 위원을 봐 왔던 사람들은 그를 '경제학자', '학자',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한은 관계자는 "대사직보단, 오히려 평생 경제학을 한 사람으로서 금통위원직을 맡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며 "국제 컨퍼런스 등에 참가할 때에도 경제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명확히 밝히곤 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중앙은행 역할이 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시점이라 더욱 중요하다"고 전했다.
조 위원은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 석ㆍ박사 학위를 땄다. 이후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했고, 한국조세연구원 부원장을 거쳐 외환위기 직전 재정경제원 장관 자문관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맡았다. 이후 2016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정책 캠프라고 할 수 있는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소장을 맡아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문 대통령의 경제 교사'라는 별명도 얻은 이유다. 그만큼 현 정부와 인연이 깊다는 것이다. 장관급 예우를 받았던 주미대사를 역임했던 만큼 '총재급 금통위원'이란 말도 나온다.
그렇다면 경제 성향은 어떨까. 차 교수는 그를 '케인지언(케인스학파)'이라고 일컬었다. 시장논리에 모든 걸 맡긴다고 해결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논리가 작동하지 않을 때엔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평소에도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와 분배 측면에도 관심이 많다. 정부 한 관계자는 "복지와 분배 측면을 매우 중요시하는 인물"이라며 "재정의 역할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시장을 중시하면서도 따뜻한 가슴을 지닌 분"이라고 전했다.
다만 아예 시장논리를 무시하는 인물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을 믿긴 믿되, 필요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중앙은행과 재정정책이 발을 맞춰야 하는 경우가 세계적으로 많아졌는데, 이 부분에 대해 조 위원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조 위원이 청와대 경제보좌관으로 있을 때 보고를 자주 했다는 한 정부 관계자는 "자신과 맞는 성향이든 아니든 끝까지 경청하고 중간적 입장에서 들어주려고 했던 분"이라며 "정치적으로 오신 청와대 수석들 중엔 자기 생각만 얘기하던 분들도 있었는데 조 위원은 그런 분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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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코로나19로 경제가 비상한 상황인 만큼, 조 위원은 중앙은행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한은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상 처음으로 0%대로 금리를 내렸고, 무제한 RP(환매조건부채권) 매입 등을 통해 '한국형 양적완화'에 돌입했다.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증권사 등 비은행 대출에 나서기도 했다. 통화정책과 정부 정책간의 공조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조 위원은 전날 한은 본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세계 경제는 큰 혼란기에 빠져있고, 한국경제는 그동안 지속해온 구조적 변화로 상당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여기에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국내외 경제는 비상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시점에서 금통위원의 역할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한국경제가 안정적이며 지속 가능한 성장 과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통화정책 면에서 뒷받침하기 위해 금통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꾸준히 공부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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