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꽃 오므라드는 담장 아래 거미 한 마리 기어간다. 꽃술을 튕기듯 새로 뽑은 실로 엮은 무늬마다 사로잡힌 몸놀림. 해 다 진 처마 아래 구름을 저미는 빛살. 빈 하늘에 저 혼자 커 가는 꽃대. 빛과 향은 서로 비추며 얽힌다. 새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 밥을 짓고 나비가 꽃을 떠난 다음 마지못해 일어나는 사람들. 저녁이면 화색이 돌았다. 담 너머론 속을 드러낸 살굿빛 그 비릿한 바람 속에서도 저마다 핏기를 씻어 낸 꿈. 가정이라는 말이었다. 귀 기울이면 풀벌레 기어가는 아우성. 매달린 이슬마다 숲 한 채씩 이고 진다. 말갛게 가라앉는 지붕 아래 쪽창으론 소금에 절인 잠과 꿈. 게거품 몽글몽글 토해 내는 불빛으로 겨우,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AD

[오후 한 詩] 정릉/신동옥
AD
원본보기 아이콘


■ 왜 이렇게까지 소슬한 것이냐. 왜 이렇게까지 저미는 것이냐. 그리고 또 왜 이렇게까지 비릿한 것이냐. 그러나 정녕 종국에는 왜 이다지도 말간 것이냐. "가정"이라는 말 말이다. "사람"이라는 말 말이다. "겨우, 사람"이라는, "소금에 절"이고 절였을, "핏기를 씻어 낸" 저 말 말이다. 근 사십 년 저편의 정릉을 기억한다. 시에 적힌 그대로다. 시에 적힌 그대로여서 여전할 것만 같고 그래서 아득하기만 한 거기, 정릉, 정릉에 살던 사람들. "새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 밥을 짓고 나비가 꽃을 떠난 다음 마지못해 일어나"던 민달팽이 같던 사람들, "빈 하늘에 저 혼자 커 가"던, 결코 꽃이 아니라, 그저 "꽃대"만 같던 친구들. 그래 지금은 다들 안녕하신지, 아니 무사하기나 하신지. 어쩌면 오늘도 "숲 한 채씩 이고" 지고 어느 "해 다 진" 골목길을 다시 오르고 있을까나. 사는 게 온통 "아우성"이다. 사는 게 모조리 아찔하다. 그런데, 그런데도 왜 이렇게나 걷잡을 수 없이 밀물져 스미는 것이냐. 산다는 거, 살아 있다는 거, "겨우" 그거 말이다. 채상우 시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