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까지 내다 판 北, 고강도 제재 피해 '외화벌이' 주력…석탄·암호화폐 적극 활용
UN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모래, 석탄, 조업권 등 팔아 6억달러 수입 추정
해상 환적에 직접 운송까지, 더 대담해진 제재 위반
'목적지 위장' 중국 선박, 한국 선박으로부터 정유 제품 환적 받아 北으로
사이버 외화벌이 예의주시, 정찰총국이 주도한 듯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국제사회 감시를 피해 석탄과 모래를 팔아 외화를 벌어 들이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공해상에서 환적을 통해 물자를 들여오는가 하면 항구에서 물자를 직접 주고 받는 등 제재 위반 사례가 갈 수록 대담해지고 있는가 하면, 국제사회 제재로 인해 줄어든 외화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사이버 해킹이나 가상 화폐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외신이 공개한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연례보고서에는 이 같은 내용의 북한 제재위반 사례가 담겼다. 북한은 특히 지난해 수출 금지 품목인 모래와 석탄을 팔아 5억~6억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됐다. 공개된 연례보고서는 회원국의 보고를 토대로 전문가 패널이 자체 조사를 벌인 이후 15개국 안보리 이사국의 승인을 거쳤다.
특히 모래까지 퍼내 수출한 사례가 포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사회 제재로 해외에 인력을 파견해 외화를 벌어 들이는 전통적 방법이 여의치 않자 감시망을 피해 내다 팔 수 있는 모든 것에 손을 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지난해 5월 이후 북한에서 채취한 하천 모래가 적어도 100차례 중국으로 수출됐다. 수출된 하천 모래 산지는 황해도 해주와 함경남도 신창으로 수출 물량은 최소 100만t, 총 2200만달러 어치로 추정됐다. t당 22달러 수준이다. 모래는 2017년 채택된 대북결의안 2397호에 의해 수출 금지품목 HS코드 25번에 해당한다.
처음으로 확인된 모래 수출과 함께 중국에 석탄과 조업권을 판매하는 제재 위반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연례보고서는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최소 370만t의 석탄이 수출됐으며, 이를 통해 북한이 약 3억7000만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했다. 한화로 4500억원에 이른다. 1월부터 4월까지 수출 물량은 92만8000t이었으나 5월부터 8월까지 270만t으로 2배 가까이 늘었고,
11월과 12월에도 남포항과 송림항에서 석탄 수출 장면에 위성에 포착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포항 부두에서 최소 16척, 인근에서 87척이 포착됐고 송림항 부두에서도 최소 17척, 인근에서 17척이 석탄 수출에 동원됐다. 대북제재위원회는 확인된 선박의 수는 중복을 피해 보수적으로 집계한 수치라고 밝혔다.
석탄 수출에는 자체 동력을 가진 중국 소유의 북한 바지선이 사용됐고 지난해 5월 이후 남포항과 태안항에서 석탄을 실은 중국 소유 바지선들이 저장성 항저우만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됐다. 이렇게 수출한 석탄은 지난해 5~8월 47차례에 걸쳐 54만t, 5~9월에는 37척의 바지선이 동원됐다. 북한 선박이 직접 중국 항구에 드나드는 사례도 다수 포착됐다.
중국 선박에 조업권을 팔아 외화를 조달하는 위반 사례 역시 지속됐다. 보고서는 지난해 수치를 따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한 선원의 인터뷰를 근거로 3개월 조업권이 5만7600달러 수준이라고 전했다.
◆암호화폐 새 외화벌이 수단으로 적극 활용= 대북제재위가 지속적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는 또 다른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은 암호화폐다. 북한의 사이버 능력이 갈수록 강화하고 있고 이를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는 게 제재위의 판단이다. 저위험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만큼 지속적으로 암호화폐를 채굴하고 금융시장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도 여전하다는 게 대북제재위 판단이다.
지난해 4월에 평양에서 열린 국제 암호화폐 회의(cryptocurrency conference)에 참석한 미국 전문가 버질 그리피스에 따르면 회의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제재 회피와 돈세탁에 맞춰졌다. 그리피스는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 위반 협의로 기소돼 수감 상태다. 아울러 제제위는 북한 해킹조직 라자루스(Lazarus) 그룹이 동유럽 사이버 범죄그룹인 트릭봇(Trickbot Group)과 연계돼 있으며 최근에는 이른바 '앵커 프로젝트(Anchor Project)'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재위는 특히 사이버 공격에는 북한의 정찰총국(RGB)이 관여하고 있다고 봤다. 2016년과 2017년 대북제제위를 겨냥한 '스피어피싱' 공격도 정찰총국이 주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이번 보고서에는 북한의 사이버 수익을 제시하지 않았다. 앞서 제재위는 지난해 9월 중간보고를 통해 정찰총국 산하 121국 해커부대가 2015년 12월부터 2019년 5월가지 적어도 35차례 사이버 해킹을 시도했고, 최대 20억달러를 벌어 들였다고 추정했다.
◆추정 정유 제품 수입 규모, 연간 한도의 최대 8배 달해= 대북제재위원회는 북한이 수입한 정유 제품의 규모는 연간 한도인 50만 배럴보다 최대 8배 많다고 추정했다. 규모는 지난해 1월에서 10월까지 최대 389만 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선적률을 33%, 50%, 90%로 가정한 이후 산정한 결과다.
특히 외국선박이 남포항까지 직접 들어와 정유 제품을 운송하는 다수의 사례가 포착됐다. 지난해 1~10월 외국 유조선은 64차례 정유 제품을 운송했고, 이를 통해 북한은 56만~153만배럴의 정유 제품을 수입했다. 6~10월에는 북한 국적 선박보다 외국 선박의 운송 빈도가 높았다. 북한의 입장에서 환적보다 직접 운송을 통한 수입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결과로 풀이된다.
제3국 선박 사이의 환적을 통한 정유 제품 공급 역시 지속됐다. 공해상에서 3국 선박이 정유 제품을 환적해 북한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북한이 감시망을 피해 3국 선박을 통해 제품을 들여옴에 따라 한국과 인도 선박이 영문도 모른 채 연루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선박은 지난해 7~8월 중국 국적 '윤홍 8'에 4차례 정유 제품을 환적했다. 인도 선박도 지난해 9~11월 공해상에서 윤홍 8호에 정유 제품을 건넸다. 이 과정에서 윤홍 8호의 남포항 기항통지(port call)는 환적 후, 입항 직전에 이뤄졌다. 유엔 제재 대상 국가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는다는 서약서 서명도 이뤄졌지만 실제로 이행되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정상적인 절차로 가장한 외국 선박에 제품을 건넸다가 제재 위반에 연루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에 대북제재위원회는 북한 선박에 직접 환적을 한 것이 아닌 경우는 제재 결의를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3국 선박 간 해상 환적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김정은 마이바흐' 6개국 돌아 평양 밀반입, 사치품 수입도 여전= 대북제제위원회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전용차인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600 2대는 8개월 동안 6개국을 돌고 돌아 평양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했다. 도요타 렉서스 LX 570 모델도 북한에 반입됐다. 이들 차량은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북한으로의 수출 금지 품목이다.
대북제재위는 보고서에 '방탄 마이바흐' 차량의 식별번호(WDD222 1761A355444 및 WDD2221761A356398)를 기재했다. 차량을 최초 구입한 곳은 이탈리아 외장업체 '유로피언 카스 & 모어, S.R.L.'이다. 이들 차량은 2018년 2월 독일 공장에서 해당 이탈리아 업체로 옮겨졌고 이탈리아에서 등록됐다. 그런데 4개월 뒤 동일한 식별번호의 차량이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에서 컨테이너에 적재됐다. 북한과 접촉한 사례가 있는 또 다른 이탈리아 물류업체가 선적을 맡았다. 행선지는 중국 다롄 항이었다.
그렇지만 수탁인이 두차례 바뀌었고 다롄 항만 측은 선박에 실린 차량의 환적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대북제재위는 설명했다. 이후 수탁인은 일본 오사카 업체(Zuisyo)로 변경, 차량은 다시 오사카로 이동했다. 당시 7월1일 자 이탈리아 물류 업체와 오사카 업체 간 판매계약서에는 '메르세데스 S600 세단 롱가드 VR 9' 2대의 가격으로 90만 유로(약 12억 원)가 기재됐다. 대당 6억원꼴이다.
차량을 실은 선박은 8월 31일 오사카항에 도착했다가, 태풍으로 일정이 지연되면서 9월 27일 오사카항을 출항해 부산으로 향했다. 컨테이너는 부산항에서 토고 국적 화물선 'DN5505'호로 옮겨져 러시아 나홋카항으로 향했다. DN5505호는 10월 초 부산항을 출항했다가 곧바로 종적을 감췄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동식별장치(AIS)를 끈 것이다. 나훗카항은 당시 DN5505호의 입항 기록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대북제재위는 10월 5일께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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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위는 위스키를 포함해 와인 등 주류를 꾸준히 수입했고 지난해 2월에는 러시아산 보드카 9만병이 압수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스위스 기업 'ABB'가 생산한 로봇 3대가 북한에 반입된 경로도 추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수산사업소와 통천 물고기 가공 사업소 현지 지도에 나섰다면서 자료화면을 내보냈는데, 해당 화면에는 ABB 로고가 박힌 로봇 제품이 포착됐다. 이에 ABB측은 지난 2017년 4월부터 2018년 11월 사이에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된 모델이라고 설명하면서 중고 로봇 거래를 하는 2차 시장이 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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