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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 코로나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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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1. 마스크를 챙겨 집을 나선다. 회사 로비에서 체온을 측정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비치돼 있는 세정제로 손을 정성껏 닦는다. 텅 빈 사무실로 들어선다. 직원들은 10시로 출근 시간이 조정됐고, 또 삼분의 일은 돌아가며 재택 근무 중이다. 해외 현장과 연결해 화상회의를 마친 후 역시 화상으로 재택 근무 중인 직원에게서 보고를 받는다. 심지어 같은 건물에 근무하는 사람들과도 대면이 아닌 화상으로 회의를 진행한다. 점심 시간이 되면 4부제로 운영되면서 한결 한산해진 구내 식당에 가서 마치 극장처럼 일렬로 앉아서 서로 거리를 두고 식사를 한다. 회식을 중단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고, 3월과 4월 예정된 해외 출장은 모두 취소됐다. 코로나로 달라진 나의 일상이다.


풍경 #2. 코로나는 내가 재직하고 있는 건설회사도 강타해 올해 계획을 뒤흔들고 있다. 중국, 유럽 등에서 기자재 제작이 중단되면서 조달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중동과 아시아 국가 등에서 내려진 출입국 금지, 통행 금지, 이동 제한 등으로 현장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해외 현장에서는 정도가 다를 뿐 대부분 공기 지연을 예상하고 있으며, 은행 운영이 중단된 나라에서는 받아야 할 돈도 제 때 못 받고 있다. 급락하고 있는 유가 탓에 올해 예정되어 있던 프로젝트가 취소되는 경우도 생겼다.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기분이다.

풍경 #3. 퇴근 길, 뉴질랜드에 사시는 어머니의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드렸더니, 뉴질랜드의 전국적 제재 소식을 전한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약국과 슈퍼마켓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업장이 문을 닫아야 하고, 전국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외출이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이러다 말겠지, 곧 지나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는 사라지고, 이제는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가는 코로나의 끝이 언제 일지 두려움이 몰려온다. 코로나가 지나가도 그 상처가 아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에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나라도 개인도 살다 보면 위기를 만난다. 짧지 않은 생을 살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위기 가운데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지내는지에 따라서 위기가 지나간 후 결과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살면서 몇 번의 위기를 겪었고, 그 당시는 어두움에 갇혀 미래를 감히 생각할 힘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내야 할 하루가 너무 무겁게 여겨져서 눈물로 하루를 시작했었다. 절망과 함께 시작한 하루 하루를 그래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아들들 때문이었다. 내 삶에 도저히 일어날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나 폭풍처럼 내가 가진 것들을 휩쓸고 갔을 때, 내 곁에 있었던 아들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루 하루를 견뎌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새 어두움의 터널 끝에 가 있었다. 위기는 반드시 지나가고 위기를 잘 겪어낸 사람은 ‘견고함’이라는 열매를 얻게 된다. 위기를 호되게 겪어본 사람만이 그 다음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도리어 위기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된다. 식민지와 전쟁, 분단의 아픔을 잘 겪어낸 우리 대한민국에는 “견고함”의 DNA가 이미 자리잡고 있다.


언젠가 해외 출장 중 공항 근처에서 의족을 낀 육상 선수의 사진이 담긴 커다란 광고판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광고판에는 “당신이 잃어버린 것보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코로나는 폭풍처럼 다가와 우리의 평온한 일상과 미래의 계획, 경제 질서를 흔들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잃어버린 것보다 가진 것이 훨씬 많다.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는 소중한 가족들, 직장 동료들과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견뎌 나가다 보면 어느 덧 코로나도 지나고 상처도 아물 것이다.

코로나로 움츠려 있던 이 땅에 봄 빛이 완연하다. 바쁜 일상에 쫓겨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아파트 뜰에는 벚꽃이 피었다. 두려움에 움츠려 든 우리 마음에도 따뜻한 봄꽃이 피어나길 바라며, 모처럼 마스크를 챙겨 쓰고 봄 산책을 나서 본다.


이현경 SK건설 상무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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