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소수 더나은 비주류 세상
소아암 병력에 수술하지 않고 여성으로
우연히 여성의 옷 입어 본 후
직장에선 남성·친구들과는 놀 때는 여성 옷
20대 후반 본격 커밍아웃
충남 유일했던 성 소수자 활동가
성 소수자 가시화 돼야 문제 의식 가져
"소수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한 사회"

용산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임푸른씨. 원래 인디언 핑크색 코트를 걸치고 왔으나 사진 촬영을 위해 특별히 '정의당' 배지가 박힌 짙은 개나리색 재킷을 입었다. (사진=이현주 기자)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저는 수술도 하지 않았고 호르몬 주사도 맞지 않고 있어요. 그냥 저는 저를 긍정하니까요."
어렸을 적 소아암을 앓았던 임푸른(37)씨는 건강 악화가 우려돼 성 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커밍아웃은 20대 후반에 했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있었지만 자신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임씨의 성별을 조금 더 구체화 한다면 '논바이너리'다. 남녀 이분법에 해당하지 않는 성 정체성을 가졌지만 여성에 가깝다.
"제 고향이 온천으로 유명한데 저는 목욕탕 가는 걸 싫어했어요. 남탕에 가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그냥 제 몸을 남한테 보여주기가 싫어서요. 학교에서 2차 성징에 대해서 배우잖아요. 남자는 어깨가 넓어지고 수염이 자란다. 여성은 골반이 커지고 가슴이 나온다고 가르쳐주는데 저는 학교에서 알려준 거랑 다른 거예요. 저는 남성인데 가슴도 좀 나왔고 엉덩이도 좀 큰 편이었어요."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지만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 다닐 때까지도 남성으로 살았다.
"친구랑 많이 어울리지 않고 그냥 조용한 학생이었죠.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직장에서도 남성 옷을 입고 다녔고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점차 차별을 겪기 시작했어요. 제 나름대로 남자의 모습에 맞춰 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티가 났나 보더라고요. 그런 제가 마음에 안 든 상사는 사소한 것들부터 트집 잡으면서 계속 괴롭혔어요. 결국 일을 그만두고 집에도 얘기하게 됐죠."
임씨의 커밍아웃은 여자친구의 우연한 제안 덕분이었다. 대학 졸업 후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가 여성의 옷을 입어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본 것이다.
"너무 잘 어울리는 거예요(웃음)! 그 때 '남자, 여자가 구분돼 있는 건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고 별 거부감이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직장 다닐 땐 남성 옷을 입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놀러 갈 땐 여성 옷을 입었어요."
여성으로 살기로 하면서 임씨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그가 단체를 꾸렸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충남에서 유일한 성 소수자 활동가였는데 제가 충남에선 성 소수자 얼굴이다라는 생각으로 일했고 주변에 인정도 많이 받아서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마침 직장도 그만두었던 임씨는 이 때부터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PC통신 시절부터 있었던 커뮤니티부터 노회찬 전 국회의원이 성별정정 특별법을 발의했을 때 만들어졌던 '지렁이', 트랜스젠더 퀴어 단체 '여행자'까지 약간은 자조모임의 성격을 가진 커뮤니티에서 꾸준히 활약했다. 이후 충남에서 인권교육활동가모임을 만들고 차별금지법제정연대도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다. 인권 교육하기 위해 활동가들과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충남 인권조례 폐지 반대에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숙대 입학 트랜스젠더 취소 "안타까워"
주변에서 성 소수자 경험 못한 점 아쉬워
커밍아웃 안 해서 모를 뿐
'동성애=나쁘다'식 인권교육 멈춰야
산나 마린 핀란드 총재, 동성 가정에서 성장해
최근 숙대 트랜스젠더 여대생 입학 취소 사건과 관련해서는 "안타깝다"며 운을 뗐다. 임씨는 "청소년기에 충분히 인권 교육을 받았다면 (일부 숙대생들이) 그렇게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또 성 소수자 쪽 패널 한 명, 반대 쪽 한 명이 현안에 대해서 얘기하는 토론의 장이 마련됐다면 지금보단 나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성 소수자를 주변에서 겪어보지 못 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점도 있어서 그 집단을 '차별적인 사람들'이라거나 '혐오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했다.
주변에서 우리가 성 소수자들을 쉽게 볼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벽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커밍아웃을 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탓이다. 그는 "확률적으로 없을 수가 없는데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당사자라서 주변에 있어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성애가 무조건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친다는 식의 인권 교육 수업은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른넷의 나이로 최연소 국가 정상이 된 핀란드의 산나 마린 총리를 예로 들며 "엄마가 이혼한 후 동성과 결혼하며 어머니가 둘인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전혀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성 소수자 관련 법 제정 전에 선 과제로 흔히 얘기 되는 '사회적 합의'는 자신을 포함한 성 소수자들이 먼저 드러나는 것이 첫 걸음이라고 했다. 그는 "가시화가 되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게 될 테고, 그런 문제 의식을 통해 입법 활동도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임씨는 끊임 없이 도전하는 중이다. 이번엔 정의당 비례대표 예비후보 경선에 뛰어 들었다. 결과는 크게 상관 없었다. 임씨는 "변희수 하사와 숙대 여대생이 용기를 내서 말했는데 정치권에서 성 소수자 후보는 한 명 나와서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차별금지법, 동반자법, 성별정정 등 소수자 관련 입법 과제에 대해 최대한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출마의 변에서 밝힌 것처럼 임씨는 "모든 소수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든 갑자기 해직을 당하거나 비정규직이 될 수도 있고 또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외국으로 이주해 이주민이 될 수도 있어요.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할 뿐, 우리는 대부분 소수성을 갖고 있어요. 때문에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멈추고 모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는 어릴 땐 30대 이후의 삶이 상상이 되지 않았고, 30대가 된 지금도 50살 너머의 삶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임씨는 "그 누구도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데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당사자 정치'를 하는 것은 저에게도 그만큼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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