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키코 배상' 끌어낸 윤석헌 금감원장(종합)
우리銀 이사회 승인, 하나銀 이사회 통과 예고…신한銀도 4일 이사회서 키코 배상 승인 가능성 높아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 급등으로 수많은 중소기업을 도산시킨 '키코(KIKO) 사태' 발생 12년 만에 피해기업 배상 길이 열리게 됐다. 당시 키코를 판매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이 금융감독원의 권고를 받아들여 외환파생상품 키코 피해기업 배상에 나서기로 한 것. 학자 시절부터 '키코는 사기'라고 주장하며 키코 재조사를 요구해 온 윤석헌 금감원장이 '소비자보호'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금융권에 다시 한 번 관철시켰다는 평가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주 이사회를 열고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해 12월 결정한 키코 배상 권고를 수용키로 의결했다.
금감원은 신한ㆍ우리ㆍKDB산업ㆍKEB하나ㆍ대구ㆍ한국씨티은행 등 6개 은행을 상대로 키코 피해기업 4곳에 총 255억원(피해액의 15~41%)을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우리은행은 피해기업 2곳에 42억원을 배상해야 하는데 은행 중 처음으로 배상안을 전격 수락키로 한 것이다.
하나은행도 이번주 이사회를 열어 금감원의 키코 배상안을 받아들일 방침이다. 이 은행 경영진과 이사회는 일찌감치 키코 배상을 결정했다. 지난달 8일 열린 이사회에서 키코 자율조정을 위한 은행 협의체에 참여키로 한 것. 키코 피해기업 147곳에 대한 자율조정 참여는 분쟁조정 수락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사실상 지난달 초 이사회가 키코 배상을 승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한은행은 이달 4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키코 배상 수락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민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 10년이 지났고 법적 배상 의무가 없다는 점, 배임 소지로 일부 사외이사가 반대하고 있지만 키코 배상안의 이사회 통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신한은행의 키코 배상액은 이번 분쟁조정분 150억원과 향후 이뤄질 자율조정분 400억원을 합쳐 총 550억원으로 은행 중 가장 많다.
대구은행도 다른 시중은행의 결정에 따를 방침이라 배상안 수락 가능성이 높다. 씨티은행은 미국 본사 이사회 결정에 따라야 하고 산업은행은 아직 배상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정 시한은 오는 7일까지다. 6개 은행들이 분쟁조정을 수용하면 향후 147개 기업에 대한 자율조정이 이뤄진다. 자율조정에 따른 배상액은 2000억원대로 추산된다.
은행 일부가 금감원의 키코 배상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윤 원장은 취임초부터 일관되게 강조해 온 소비자보호 기조를 다시 한 번 관철하게 됐다. 키코 배상은 오롯이 윤 원장의 의지만으로 끌어낸 결과다. 2017년 금융행정혁신위원장 시절에는 금융위원회에 키코 재조사를 요구했고 2018년 5월 금감원장 취임 직후에는 키코 문제를 원점에서 재조사하라고 주문했다.
윤 원장은 평소 "은행은 위험상품인 키코를 팔며 리스크를 헤지했지만 수출기업에겐 헤징을 권하지 않았다"며 "위험을 알면서 은행만 위험을 헤징했다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3년 대법원 판결이 나온지 5년만에 키코를 재소환한 것과 관련해서는 "감독당국이 그동안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키코 재조사로 조직(감독당국)에 부담을 줄까봐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감독당국과 은행 모두 잘못을 바로잡자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해 왔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감독당국 수장이 바뀌면 이미 끝난 문제가 재소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감독정책의 불확실성을 걱정하는 의견도 있다. 은행이 소비자보호에 대한 감독당국의 기조에 공감하기 보다는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손실,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돌려막기 사태에 따른 비판 여론으로 떠밀리듯 '울며 겨자먹기'로 배상에 나선 측면도 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연차 내고 프로필에 '파업', "삼성 망한 듯"… 내...
그러나 키코 사태가 수많은 중소기업을 줄도산으로 이끌었다는 점, 정보에서 우위에 있는 은행이 중소기업에만 리스크를 떠넘겼다는 점에서 은행이 소비자보호를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투기상품에 투자하듯 키코에 가입한 기업도 일부 있지만 은행에 대한 신뢰를 흔든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이론이 없다. 2010년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은행과 키코 계약을 맺은 738개 기업에 3조2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 조사 결과 키코 계약기업 919개 중 연락이 닿는 417곳 중 235곳이 도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