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日 아닌 인권의 문제" 2030은 보편적 가치에 반응했다
日 여행 즐기고 日에 호의적 세대지만
불매운동 참여율·지지는 가장 높아
역사적 감정 아닌 日 부당조치에 저항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홍콩시위 지지
일부러 가치로 뭉쳐낸 집단이 아닌
SNS 등을 통해 개인이 모여 집단화
철저히 개별화된 판단 바탕으로 행동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안가요 #안사요 #안팔아요
지난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노재팬(NO JAPAN)' 운동과 홍콩의 민주화 시위. 두 나라의 젊은 세대가 주도한 전혀 다른 성격의 움직임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한국과 홍콩의 2030은 어떤 지점에서 분노했고 어떤 지점을 행동의 계기로 삼았을까. 이를 살펴보는 것은 2030이 가진 감성 그리고 용인하지 못하는 어떤 것, 그들의 정서 깊은 곳에 자리잡은 본질적 가치관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정의ㆍ공정ㆍ인권…보편적 가치에 반응하는 2030=한국의 2030 세대는 일본 여행을 국내 못지않게 자주 다니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광복 이후 어떤 세대보다 일본에 대한 반감이 덜한 세대다. 그들의 노재팬 운동을 단순한 '반일감정'으로 치부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
케이블 방송PD로 5년째 일하고 있는 '말티즈는 참지않긔'(29ㆍ별칭)는 "강제노동에 시달린 우리 선조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건 땅을 칠 일"이라며 "노동의 고단함을 알기에 일본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목소리는 내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말티즈는 참지않긔의 말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우리 선조'나 '노동의 고단함'이 아니다. 실질적인 방점은 '강제'와 '보상'에 찍혀 있다.
충북 청주에서 교사로 일하는 '말선생'(33)은 "노재팬 운동은 일본 정부의 역사적 만행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책임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시민을 주축으로 한 정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역시 불매운동의 파급력이 컸던 배경에 보편적 인권 문제가 있다고 봤다. 최 교수는 "최근 미투 운동과 연결돼 파급력이 컸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등은 젊은 세대가 공감하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고 했다.
◆홍콩은 보편적 '정상 사회'를 요구했다=지난해 6월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로 시작된 홍콩 민주화 시위. 인구 700만명의 도시에 하루 최대 200만명이 시위에 참여한 동력은 홍콩의 젊은 세대였다. 홍콩 시위대는 SNS를 통해 사진과 동영상을 끊임 없이 올려 전 세계에 지지를 호소했다.
홍콩에서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떠올린 이들이 적지 않다. 말티즈는참지않긔는 "홍콩 시위를 보면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가 떠올랐다"며 "홍콩 시위대가 결국 자유를 쟁취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천센언니'(35)는 "한국의 상황이 홍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정치적 자유는 어느 정도 보장됐지만 자본ㆍ세대 간 수직 구도 속에서 한국의 젊은 세대는 여전히 해방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2030 세대가 홍콩 시위에 지지를 보내는 맥락이다. 취업성공남(30)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편 가치를 요구하는 홍콩 시위대의 의지를 무력으로 짓밟는 중국 정부의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며 "계속적인 시위를 통해 홍콩을 넘어 중국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보편적 가치다. 이것이 훼손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비정상' 상태다.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것만큼이나, 국내 대학가 현수막을 중국 유학생들이 훼손하는 행위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 건강하고 발전적인 사회 담론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것이다.
'말선생'은 "보편적 가치에 대한 '참견'은 사회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우리나라가 민주화돼 있지 않았던 1970~80년대 서방 선진국의 언론과 시민사회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별없는 연대는 싫다=2030 세대는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존중한다. 진영논리를 바탕으로 '덮어두고' 지지하지 않는다. 프리랜서 직업인 프리맨(33)은 "따지고 들면 스마트폰 정밀부품에도 일본산 많이 들어가 있는데 그렇게 보면 일본 불매 대상이 너무 광범위해진다"며 "'과거 전범이력이 있는 일본기업', '역사왜곡, 우익단체를 지원하는 일본기업' 등에 대한 불매운동처럼 명분이 확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설령 일본 여행을 간다고 해도 사람마다 이유가 있는 것인데, 무조건 '매국노'로 낙인을 찍고 비난하는 일이 옳은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일본 불매운동을 주변에 강요하거나, 과도하게 국제 정세를 강조하는 경우를 '킹시국', '갓시국'으로 비꼬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결국 2030의 노재팬 운동이나 그들이 홍콩 시위를 바라보는 관점은 철저히 '나의 문제', '보편적 가치의 훼손'이라는 명분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젊은 세대가 공유하는 어떤 가치가 지배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비치지만, 사실 그들은 '개별화'된 판단 속에서 자신의 행동에 몰입하고 있을 뿐이다.
홍콩의 국가 폭력과 인권 침해에 저항하는 연대 집회가 지난해 11월 24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서 열리고 있다. 참가자들이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며 시위대의 5대 요구 수용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5대 요구 사항은 송환법 전면 철폐, 경찰의 강력 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명명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등이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원본보기 아이콘◆파편화된 개인 그리고 집단화 테크놀로지=노재팬 운동을 통해 젊은 세대는 소비권력으로서 소비자 개개인이 가진 힘을 보여줬다. 2030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ㆍ인터넷ㆍ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했다. 디지털은 개인에게 권력을 이양시킨다. 자신이 원할 때 선택하고 통제권을 가지며 자유를 중시한다. 개인이 가진 힘을 과소평가하지 않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을 SNS를 통해 조직화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일본 언론은 노재팬 운동을 조소했었다. 과거 사례를 들추며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를 비웃듯 한국의 젊은 세대는 빠르고 정확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노재팬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장기를 불태우거나 오물을 투척하는 등 방식의 반일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행 항공권 취소 티켓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해시태그를 다는 게 그들의 행동 방식이다. 인천센언니는 "쓰지 않고 모이지 않는 힘은 무력(無力)이다"라며 "노재팬 운동은 주체적인 권력으로서 2030이 '굴복하며 살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라고 말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연차 내고 프로필에 '파업', "삼성 망한 듯"… 내...
한국갤럽이 7월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 보이콧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20대 응답률은 66%였다. 이후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발표하기 직전인 8월초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20대의 참여의사가 76.1%로 높아졌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경험한 70,80대나 반일감정을 노골적으로 교육 받은 중장년층 세대를 포함해 모든 조사군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