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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생전 고인의 뜻, 가족이 더 잘 알 것"(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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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명예회장 생전 '사회환원' 의사 질문에
"유가족이 상의해서 말할 문제" 즉답 피해
별세한 신격호 명예회장, 유산 1조원 추정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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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차민영 기자, 이승진 기자] 1조원을 훌쩍 웃도는 것으로 추정되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유산 배분 문제와 관련해 롯데그룹이 20일 "가족들이 논의할 사항"이라며 선을 그었다.


신 명예회장의 장례 이틀째인 이날 오후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황 부회장은 지난 19일 노환으로 별세한 신 명예회장의 장례식에서 장례위원장을 맡고 있다.

황 부회장은 고인이 된 신 명예회장이 생전 재산의 사회환원 의사를 밝혔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가족이 생활을 더 많이 했으니 가족끼리 의논해서 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가족간의 관계로 유언을 남겼는지 확인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개인 재산은 주식과 부동산을 합쳐 총 1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1분기 기준 국내에서 롯데지주(지분율 3.10%), 롯데칠성음료(1.30%), 롯데쇼핑(0.93%), 롯데제과(4.48%) 등의 상장사 지분과 비상장사 롯데물산(6.87%)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보유 지분 가치는 약 30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시 계양구 목상동의 골프장 부지 166만7392㎡ 보유 자산은 4500억원대로 추정된다. 일본에서는 광윤사(0.83%), 롯데홀딩스(0.45%), LSI(1.71%), 롯데그린서비스(9.26%), 패밀리(10.0%), 크리스피크림도넛재팬(20.0%) 등의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황 부회장은 신 명예회장과 관련한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과거에 본인이 하신 말씀을 돌아보면,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 도전"이었다 라며 "창업은 창조다. 수많은 역경 넘어가는 도전이다 그래서 도전을 멈추면 기업은 스톱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대한민국에 방문했을때 고궁만 보여 줄수 없다고 하셨다"며 "신동빈 회장도 창업주 뜻을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대한민국 국민이 즐길 수 있는 롯데월드타워가 만들어 졌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은 신 명예회장의 장례를 그룹 창업주인 고인을 기리기 위해 그룹장으로 진행한다. 발인은 오는 22일 오전 6시로, 신 명예회장은 고향인 울산 울주군 선영에 안치될 예정이다.


▲다음은 황각규 부회장 발언 및 질문답변 내용


=저희 롯데그룹은 발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약간 오해도 있었던 것 같다. 평소 (신격호) 본인의 지론으로 거화취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그 정도로 자랑 안 하는 분이셨다. 실리 취한다고 해서 그렇게 많은 실리도 취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신격호 명예회장께서 과거 70년도 말 일본에서 창업하고 대한민국에 투자도 해 5대 그룹이 됐지만 과거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떻게 지내왔는지 역사를 찾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조각을 여러분께 설명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본인께서는 일본에서 1946년부터 사업을 시작하셨고 제일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잘 아실지 모르겠지만 화장품 사업 하셨다. 어느 정도 성공한 다음에 추잉껌 사업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신격호 명예회장의 철학은 '신용을 지켜야 된다'였다. 영어로는 트러스트이다. 한번 한 약속은 끝까지 지킨다. 그 이외에 여러분이 잘 알겠지만 껌 사업 성공하고 초콜릿 사업하면서 모든 은행들도 초콜릿 사업 안된다. 메이지, 모리나가라는 100년된 초콜릿 기업 있었기 때문에 외부 투자자들도 말렸다. 내부 직원들도 넘버 원, 넘버 투 플레이어가 있는데 어떻게 하냐고 반대했는데 절대 성공할 수 있다고 해서 은행 찾아가서 투자 요청하고 했다. 그 당시 일본 모 종합상사가 많이 도와줬는데 거기와는 아직도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려울 때 도와줬던 기업들은 서로 신용을 쌓고 도와주고 지금까지 (계속)한다.


=1974~77년 소공동 롯데센터 건립 당시 회사 이름이 왜 롯데쇼핑이냐면 당시 외국인 투자법에 외국인은 소매업 못하게 돼 있었다. 아마 사명을 그래서 롯데쇼핑으로 지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롯데쇼핑센터라고 지은 것이다. 75년에 땅을 샀다. 기록에 의하면 1977~78년에 당시 소공동 롯데쇼핑센터와 호텔을 건설하면서 상당한 투자를 받았다. 투자금액이 경부고속도로 만든 금액과 같았다고 했다. 당시 4억불 이상 투자한 셈. 78년 기록에 의하면 외국인 직접투자 중 약 70%가 롯데그룹이 일본에서 한국에 가져온 것이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규모 등에서 외국인 직접투자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보다 더 한 것은 일본 롯데가 1948년 설립해서 1970년대까지 25년간 벌어들인 자기자본이 170억엔정도 된다. 그 당시 한국에 투자한 돈이 약 400억원이다. 모아놓은 돈의 2.5배를 한국에 투자한 셈. 상당한 도전의 역사라고 본다. 물론 본인이 일본에 투자한 것보다 모국에 투자한 게 훨씬 자본수익률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겠지만 67년 사업에서 10년밖에 안됐는데 한국에 거금 투자했고, 그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여러분이 잘 아시는 잠실 롯데월드를 만들었다. 과거 같이 투자를 구하기 위해서 본인들이 가보고 인상 깊었던 게 캐나다 헤드먼트 인도어 테마파크를 보고 상당히 감명 받아 만들게 됐다. 거기가 인구 60만 도시인데 가족들이 쇼핑하고 즐기고 이런 걸 보고 한국도 이걸 하면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런 과정에서 물론 당연히 내부에서는 대형 투자를 하면 어렵다, 투자자본 수익이 안 나오면 어렵다 했지만 신격호 본인은 즐거움을 주는 부분에 대해선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저희들이 여러분이 잘 아는 하노이 롯데센터도, 79년 소공동 롯데호텔 하면서도 38층에 전망대가 있었다. 신격호는 항상 높은 빌딩을 지으면 전망대는 꼭 필수로 했다. 돈은 못 벌지만 고객들이 롯데에 대해 좋은 이미지 가져가는 게 장기적으로 롯데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좋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소비자들에게 주는 즐거움에 대해 많은 인사이트가 있었던 것 같다.


=본인께서 일본 와세다 대학 화학과를 졸업하셨다. 화학이라는 게 그 당시에 물자 번영 시대니까, 화장품이라는 게 글리세린 등 넣어서 피부 좋게 하는 것이었다. 츄잉껌도 풍선껌으로 시작했다. 한국에는 저희들 어릴 때 '왓다껌'이 가장 유명했다. 왓다껌 히스토리를 보면 대한민국 가장 큰 회사가 해태제과였는데 따라잡기 위해 왔다껌으로 히트했다. 일본의 제일 큰 회사가 하리스라는 제과다. 저희들은 롯데껌 출시하면서 하리스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껌이고 저희들은 풍선껌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내놓아서 하리스를 10년 안에 따라잡았다. 그 과정에서 제가 알기로는 요즘 소위 말하는 광고 판촉을 했는데 1등 당첨금으로 당시 1000만엔씩 걸었다. 히트를 한 적이 있다.


=화학과 졸업하고 첨으로 한국에 투자하고 싶었던 게 정유사업이었다고 한다. 정유사업을 하겠다고 해서 본인 말에 의하면 정부에다가 제안했는데 아쉽게도 롯데가 되지 않고 LG, 아마 지금의 GS칼텍스 같은데 LG가 가져갔다. 그 뒤에 본인이 하고싶었던 사업이 제철사업이었다. 제철사업을 그 당시 제가 알기로는 후지 제철소 1960년대 일본 롯데 안에 제출사업 하기위해 TF팀 50명이 있었다. 프로젝트 사업계획서를 만들어서 정부 제철사업하겠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국가주도로 한다고 해서 제철사업도 못하게 됐다. 50명 됐던 사업보고서를 그대로 정부로 드린 것 같다. 그 사업계획서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포항 제철이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한다. 포항 제철에 제1고료의 레이아웃이 일본의 제철소 레이아웃과 똑같다고 한다. 사업계획서가 그대로 적용된 거 아닌가 한다. 박태준 회장과 신격호 회장. 박태준 고향은 양산이고 신격호는 울산이다. 옛날에 친하게 지내면서 교감이 있었고 박태준은 대한중석이라는 회사 사장이었다. 그 사업계획서가 박태준 회장께 전달되지 않았겠나. 지금 그 뒤에 나온 프로젝트가 소공동 롯데 호텔 및 쇼핑 센터다.


=나름대로 여러가지 본인이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지만 그 뒤에 사업을 하고싶었던 생각 있었고. 롯데타워 저녁에 나가서 보시면 바로 눈앞에 롯데타워가 보일 거다. 롯데월드타워 오랜 역사 잘 아시겠지만 홍보관에 가시면 그 사이 더 좋은 모양 하려고 노력한 것 알 거다. 저자신도 2002년 2003년 경에 신격호 당시 창업주에게 백층 이상 빌딩은 건축비많이 들고 채산성 없다고 이야기 하기 때문에 저희들이 타워펠리스가 당시 분양이 잘 되던 때다. 저희도 낮추면 아파트를 지으면 더 좋지 않겠냐 했는데 본인께서 경제성은 좋을지 모르지만 본인께서 대한민국에 방문했을 때 고궁만 보여 줄수 없다. 뭔가는 쉽게 말해 역작 남기고 싶었던 꿈이 있었던 거 같다. 저희도 본인이 원하는 대한민국 랜드마크 잘 짓는 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동빈 회장한테도 창업주 뜻 거역하는 거 어려울 것 같으니 최선을 다해서 경제성 있게 대한민국 국민 즐길 수 있도록 하자고 해서 오늘날의 롯데월드타워가 됐다.


=롯데월드타워는 대한민국 방문하는 모든 분들이 지금은 다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롯데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나 싶다. 과거 본인 하신 말씀들 보면 본인께서 젤 좋아하는 말씀이 도전이다. 창업은 창조다. 일하는 방식도 열정을 많이 이야기하시는데 일하는 방식은 몰라도 되지만 열정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런 말씀을 40년 전에 많이 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는 일본 롯데가 막 성장할 무렵이니까 직원들이나 이런 과정에서 끊임없이 도전과 열정을 이야기했다. 그런 측면에서 저희들도 남겨주신 소중한 유산들을 저희들이 잘 이끌어가서 글로벌 롯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저희 임직원들도 창업자께서 남겨준 소중한 유산을 잘 받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이를 계기로 해서 다시한 번 열심히 해보고자 한다.


-유언 남기셨는지 안 남기셨는가. 사회환원 어떻게 할 것인지

=그 부분은 가족들간의 관계로 유언 남겼는지 여부 확인 안 해서 어렵다.


-상속 재산 여부는 차후 협의할 계획인가

=상속 받으신 분들끼리 의논해야 한다.


-고인이 남은 재산 환원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안다.

=본인들이 가족분들 생활 많이 했기 때문에 가족들과 이야기하지 않았겠냐


-신유미씨 혹시 왔는가

=제가 가족 일은 잘 모르겠다.


-두 형제가 안에서 대화 나누시고 했냐

=보시기에 옆에 나란히 앉아있으니까 교감하시지 않았겠나


-화해 물꼬 트였다고 봐도 되겠냐

=그거는 제가 뭐...,


-영결식 22일 진행하는데 롯데월드타워만 돌고 끝나는 것인가

=아니다. 아마 부고에 나갔듯 영결식하고 타워 돌고 할 것. 아시다시피 울산까지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도로 사정이 설 연휴 전전날이라 예측 불가해 빠른 시간 내 서울 시간을 줄이고 시간 맞추려고 한다.


=창업자가 대한민국, 일본에서 기업을 일으키신 저희들에게 굉장히 훌륭한 분이다. 그런 측면에서 여러분도 긍정적인 기사 부탁한다. 창업 1세대 정주영, 박태준, 신격호, 골프도 같이 치고 나름대로 자수성가하신 분들 소위 말하는 멘탈은 비슷하다. 그룹본부 부장 시절부터 만 24년 일했는데 항상 하시는 이야기가 저한테 항상 많이 하는 말이 "너 가봤어?"다. 2003년 인도 과자회사 인수하기 위해 출장 여러 번 갔는데 인도 분들이 협상이 굉장히 어렵다. 터프하고 트리키(속임수를 쓰는)하기 때문. 어찌됐든 본인께서는 인도 시장이 장래성 있다고 판단하고 빨리 하고 싶었나 보다. 항상 하는 질문이 "너 가봤냐"였다. 그 당시 디지털카메라 찍은 사진 인도에 가면 삼륜차 오토릭차 찍어서 보여주면 "그거 내가 과자 영업할 때 탄 거랑 똑같이 생겼다"였다. 나이가 어떻게 되냐 물어보고 1970년대 부산을 기억하시니까 내가 잘 알지. 그 정도 수준입니다 하면 "그래도 인구가 많잖아 빨리 해" 그러셨다.


=두 번째는 저희가 사업 하다 보면 머뭇거릴 수도 있고 본인이 열심히 안 한다는 생각 들면 "끝까지 해보자, 잘할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하고 나서는 잘 안된 거에 대해선 본인이 다 책임지셨다. IMF때 어려울 때 어려운 기업에 주식도 주고 도와주고 그랬다.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도 본인 것 기부했다. 저희들이 계산해보니까 1998년 3000억원 정도 기부하셨다. 지금 자산가치로 따지면 1조원이다. 그만큼 끝까지 해보자고 말하고. 일단 하고나면 책임은 자기가 진다. 지금까지도 저희들은 항상 명예회장의 도전정신이나 끝까지 해보자는 정신에 대해선 앞으로도 DNA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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