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놓는 족족 불티…불황·변동성·규제 압박 속 정기예금 전성시대(종합)
5대 시중銀 작년말 잔액 646兆
2018년 말 대비 47.7兆 증가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우리은행이 지난 2일 1조원 한도로 내놓은 '우리고객님 고맙습니다 정기예금'은 출시한 지 5일 만에 완판됐다. 이 예금의 금리는 1년 최고 연 1.9%, 2년 최고 연 2.0%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최대 2.0%라서 인기가 높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빠르게 완판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시중금리가 낮아도 투자처가 불안한 고객들이 정기예금에 몰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3월 2조원 한도로 출시한 '2019 신한 마이카 프로야구 정기예금'이 8주 만에 전량 소진되자 1조원 규모로 상품을 재출시해 완판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지난해 7월 내놓은 특별 정기예금 상품은 출시 1초만에 모두 팔려나가는 진기록을 세웠다.
정기예금 전성시대다. 구조적 불황과 변동성의 확대, 금융ㆍ투자와 관련한 각종 규제로 길을 잃은 시중자금이 예금통장에 쌓이면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ㆍKB국민ㆍKEB하나ㆍ우리ㆍ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12월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약 646조1000억원으로 전년 12월에 견줘 47조7000억원(7.9%)이나 늘었다. 이 기간 중 정기예금 잔액이 유일하게 감소한 NH농협은행을 빼고 계산하면 증가율은 두 자릿수(10.4%)로 높아진다.
5대 은행의 2016년 12월 정기예금 잔액은 505조3000억원에 불과했다. 3년 새 140조8000억원이 늘어난 셈이다. 예금은행 전체적으로도 비슷한 흐름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해 9월 말 예금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753조400억원으로 전년동기에 대비해 72조1000억원(10.6%) 증가했다. 2018년 3분기 이후 5분기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기준금리가 1.25%로 역대 최저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기예금이 이처럼 늘어나는 건 이례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특히 가계자금이 어디로 흘러갈지 갈피를 못 잡는 분위기"라면서 "부동산대출 규제로 보유하고 있는 돈에 대출금을 보태 투자하는 것도 마땅치 않고 불황과 저성장이 고착화하면서 다른 투자처를 찾는 것도 망설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최근 잇따라 터진 각종 금융상품의 대규모 손실사태가 금융소비자들의 적극적인 투자활동을 억제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자산의 증식보다는 안전자산의 축적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짙어진다는 뜻이다. 예금보험공사가 전날 발표한 '2019년 9월말 부보예금 동향'이 이 같은 설명을 뒷받침한다. 2019년 3분기말 부보예금 잔액은 2184조2000억원으로 전분기말 대비 1.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부보예금은 예보의 보호대상 예금(은행ㆍ저축은행 예금, 금융투자사 고객예탁금, 보험사 책임준비금, 종금사 CMA 등)에서 예금자가 정부ㆍ공공기관ㆍ부보금융회사인 경우를 제외한 예금이다. 부보예금은 2018년 9월말 2075조5000억원, 12월말 2103조4000억원, 2019년 3월말 2133조4000억원, 6월말 2156조2000억원으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다.
반면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투자처인 사모펀드의 판매 잔액은 꾸준히 줄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으로 개인투자자에게 팔린 사모펀드 잔액은 전월 말 대비 약 9900억원 감소했다. 2007년 12월(1조900억원 감소) 이후 약 12년 만에 가장 큰 월간 감소 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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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관계자는 "금융ㆍ투자의 심리가 전반적으로 크게 위축돼있다"면서 "부동산대출을 옥죄는 정부 기조가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어 올해 내내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새로운 예대율 규제로 은행들이 예금유치에 적극적인데다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LCR) 최저 한도 기준의 증가까지 겹쳐 자금이 정기예금 등에 몰리는 추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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