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방재연구센터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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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강민식(당시 9세)군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일을 계기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교통 규제를 강화한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마련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법제화 과정에서 난항을 겪었다. 제재 대상이 광범위하고 형벌이 가혹하다는 의견과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만큼은 어린이 사망사고를 '제로'화하자는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다.


교통사고는 운전자의 과실 또는 부주의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보행자의 부주의나 과실로도 발생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는 사고발생의 원인을 누가 제공했든 모든 책임은 어른인 운전자가 진다. 그러나 민식이법과 같이 강력한 어린이 보호대책을 마련했다고 어린이 교통사고가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건 섣부르다.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민식이법 운영과 함께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꿈을 키우고 마음껏 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른의 책무다. 그러나 한편으로 성실하게 법을 준수하며 살아가는 어른들 또한 그들의 방식이 존중받아야 한다. 어린이와 어른이 교차하는 공간에서는 어린이 시점으로 공간을 바라보고 전적으로 어린이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모든 규칙이 전환될 때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시속 30㎞의 속도로 주행하는 자동차는 1초 동안 약 8.3m를 이동한다. 통상적 인지반응시간(위험을 인지하고 브레이크를 밟는 데 걸리는 총 시간)이 1초 내외임을 감안하면 시속 30㎞의 규정 속도를 지키면서 어린이 보호구역을 통과하고 있더라도 갑자기 뛰어나온 어린이가 8m 이내에 있다면 사고는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학교 주변 도로 상황은 어떠한가. 8m 이내에 있는 어린이를 발견하기 쉬운 구조인가. 어린이 보호구역 표지판 아래에서 등하교 승용차, 학원차량의 불법주정차가 공공연하게 발생하고 있고 대형 입간판 등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규정 속도를 지켰음에도 어린이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린이 보호구역 내 불법주정차를 강력히 차단해야 한다. 지정된 장소에서만 승하차가 가능하도록 드롭존(Drop Zone)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강력한 제도가 시행된다면 그만큼 지킬 수 있는 환경도 함께 조성해야 한다.


어른 세계에 '초보운전'이 있다면 어린이 세계에는 '초보보행'이 있다. 우리는 어른 나라로 들어온 어린이들에게 스스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교육한 적도 없다. '오른손 들고 길을 건너라'는 식의 단편적이고 진부한 교통안전 교육이 전부다. 프랑스의 경우 교통안전 교육이 의무과정으로 편성돼 초등학생부터 이수하게 돼있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보행자면허'를 받게 되는데, 보행자면허가 없는 경우 보호자 손을 잡아야 학교에 등교할 수 있다. 어린이 나라와 어른 나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연령에 맞춰 자연스럽게 교육하고 그 질서가 체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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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의 집행 방식은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 어른의 책임을 강하게 요구하기 때문에 자칫 과도한 규제로 인식될 수 있다. 민식이법은 교통안전 문화의 근간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어린이이기 때문에 보호하고 더 배려하는 행동 특성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어린이도 성장 과정에서 지켜야 할 교통ㆍ보행수칙을 교육받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고 민식이법의 제정취지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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