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에서 올 한 해 가장 충격적인 화두를 던진 이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5년 임기 대통령제 개헌 이후 검찰 권력은 공식처럼 움직였다. 정권 초기에는 격렬한 과거 정부 적폐 청산, 중기엔 여권 결집과 야권 견제를 위한 사정 정국, 말기엔 대통령 주변을 포함해 새로 쌓인 비리에 대한 적당한 설거지. 윤 총장이 이끄는 검찰은 두 단계를 건너뛰고 현 여권을 마치 지난 정권 대하듯 하고 있다.
윤 총장과 검찰을 둘러싼 해석은 엇갈린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관련해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판이 있다. 윤 총장 쪽 얘기는 다르다. 새 정권이 탄생하면 어차피 과거 털기가 시작된다. 문재인 대통령을 위한 충정에서 '예방주사'를 놓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원인이든 방아쇠는 당겨졌다. 역사는 행위자의 의도는 무시한다. 결과가 말해줄 뿐이다.
윤 총장은 자신의 선택이 여ㆍ야ㆍ정 제도권의 정화로 이어지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속내는 다르다. '내 편'을 향한 절실함이 훨씬 강해졌다. 정권 유지를 넘어 같은 진영이라도 확실한 동지 의식을 가진 이가 요직에 포진해야 안심이 된다. 사정 기관을 인적, 제도적으로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정치권의 셈법이 복잡해진다.
사실 과거에도 그랬다. 후계자를 당선시키면 편할 줄 알았는데 뒤통수 맞은 사례가 꽤 있다. 노태우 정권에서 '5공 청산'은 야당의 공세에 밀린 것만이 아니다. 1987년 대선 직후 그의 측근이 보여준 시나리오에서 5공 청산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놀란 적이 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박지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모임이 있었다.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도 대북 송금 문제로 구속을 면치 못했다. 현 야권의 몰락은 박근혜 정권이 같은 진영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주변을 샅샅이 훑으면서 시작됐다고 정치 분석가들은 말한다.
윤 총장은 여기에 하나를 더 얹었다. 임기가 충분히 남아 있는 대통령과 거듭 대립하고 있다. 이래서는 청와대가 집권 중반 이후 대통령의 레임덕을 막고 대선 후보 정리를 위한 사정 정국을 펼치지 못한다. 검찰 권력을 분산시키더라도 이전처럼 하기는 힘들다. 2020년 총선 이후에는 대권 주자를 중심으로 여야 진영 모두 각개약진이 예상된다. 새로운 정치 드라마의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
새해가 임박했으니 교과서적인 희망을 우선 밝힌다. 윤 총장이 선보인 양태가 긍정적으로 작용하길 바란다. 청와대와 정부, 여야 정치권이 법적, 도덕적으로 스스로를 엄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총선 공천도 능력 중심으로 합리적으로 이뤄졌으면 한다.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은 정책 대결을 기대한다. 국민들이 진보건, 보수건 합리적인 대안을 선택하는 분위기에 일조했으면 한다.
그러나 새해의 현실은 암울할 가능성이 높다. 여권으로서는 정권을 잡고서 이렇듯 곤욕을 겪는데, 반대의 경우는 상상하기도 싫다. '예방주사' 주장은 일각의 바람일 뿐이다. 털고, 또 터는 게 한국 정치의 특징이다. 어떤 수를 쓰든 총선부터 이겨야 한다.
야권 역시 마찬가지다. 다음 선거에서 또 지면 궤멸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진보, 보수 양 진영의 사생결단이 불 보듯 뻔하다. 폭로전과 가짜뉴스가 난무하고, 선동정치가 가열된다. 진영 내부의 칼질 역시 험악해지기 십상이다. 여권은 공천 과정과 총선 이후 대선 가도에서 권력 암투가 본격화할 것이다. 야권은 친박(친박근혜)계와 친이(친이명박)계가 물과 기름처럼 대립하며 싸운다. 답답한 쪽은 언제나 국민이다.
이목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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