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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가을귀]통합 없이 발전한 문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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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브 폰팅 '세계사 1'

[이종길의 가을귀]통합 없이 발전한 문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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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서적들은 대개 문명 위주로 역사를 나열한다. 이런 방법을 처음 시도한 역사가는 오스발트 슈펭글러(1880~1936). 저서 '서구의 몰락'에서 서구를 그리스ㆍ로마 세계와 비교했다. 그런데 예증은 거의 담지 않았다. 그는 문명이 외부 영향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실체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예술과 철학이 문명의 역사를 이룬다고 여겼다.


'역사의 연구' 저자 아널드 토인비(1889~1975)도 다르지 않다. 사회진화론자인 그는 문명이 유기체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문명은 자연환경 속에서 도전과 응전으로 등장하며, 생존투쟁에서 탄생ㆍ성장ㆍ붕괴ㆍ해체라는 공통된 주기를 겪는다고 봤다. 아울러 이런 역사에서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가 중요한 축을 이룬다고 믿었다.

그 뒤에도 많은 역사가가 나름의 체계를 구축했다. 피티림 소로킨(1889~1968)은 저서 '사회적ㆍ문화적 동학'에서 문명은 문화적 상위 체계이며 관념ㆍ감각ㆍ이성의 주기적 단계를 차례로 거친다고 주장했다. 캐럴 퀴글리(1910~1977)는 사회가 '기생사회'와 '생산사회'로 나뉘는데 각자 나름의 확장 수단을 지닌다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의 데이비드 윌킨슨 교수는 최근 '중심 문명'을 역설했다.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1850년에 이르기까지 여타 문명을 계속 통합해 결국 하나의 세계 문명으로 이뤄냈다는 주장이다. 세계사에서 최고 걸작이라 평가되는 윌리엄 맥닐(1917~2016)의 '서구의 발흥'도 본질적으로 문명적 접근법을 취했다.


이런 접근법에는 여러 문제가 따른다. 특히 문명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이며, 이제껏 지구에 문명이 몇 개 나타났는지에 대한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

토인비는 문명을 스물세 개로 설정했다. 그러나 '역사의 연구' 집필 막바지에 스물여덟 개로 수정했다. 퀴글리는 문명이 열여섯 개라고 주장했다.


일부 역사가는 일본을 '극동' 혹은 '중국' 문명과 떼어 생각한다. 중국을 나머지 아시아와 분리해 보기도 한다. 크레타섬의 미노스 문화를 별개 문명으로 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단순히 고대 그리스 문명의 전조로 보는 사가도 있다. 정통 기독교 문명이 따로 존재하는지, 이슬람 문명이 기존 문명의 유산과 전혀 별개로 존재한 바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은 일치하지 않는다.


문명이 자율적 단위이며 나름의 고유한 동력에 따라 발전한다는 사고도 피할 수 없다. 이는 세계사의 근본적 특징들을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인간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제와 기술의 배경을 볼 수 없으며, 다양한 사회의 연관성은 물론 사회 간 사상ㆍ신앙 등의 전파도 간과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철저한 고립 상태로 발전한 문명은 아메리카 대륙 문명밖에 없다. 제각각 달랐던 모든 인간 사회가 차츰 긴밀해져 하나로 뭉쳐졌다는 사실이야말로 세계사를 이루는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다.


클라이브 폰팅이 쓴 '세계사 1'은 어느 지역에도 편중되지 않는 폭넓은 세계사의 관점을 취한다. 서술 방식은 1차적으로 연대순이다. 세계 모든 지역에 존재한 인간 공동체의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서술한다.


1부에서는 인류의 진화와 세계 확산, 인류의 유목ㆍ채집 생활 등을 다룬다. 2부에서는 인간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근본적이었던 전환, 다시 말해 농경의 채택과 거기서 생겨난 정착 공동체에 관해 이야기한다. 세계 여기저기서 문명이 독립적으로 등장하는 과정도 함께 살핀다.


그런데 2부 마지막 장인 '고립: 아메리카 대륙과 태평양'은 다른 지역들과 달리 이들 문명이 유럽인과 최초로 접촉하게 될 때까지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자기들만의 고유하고 독립적인 문명을 발달시키긴 했으나, 유럽인과 조우할 당시 사회ㆍ경제적 수준이 기원전 2000년 무렵의 유라시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태즈메이니아인은 본토와 분리되어 살았기에 새로운 기술 발달이 없었고, 따라서 돌촉이 달린 손잡이 도구, 부메랑, 투창기, 방패와 도끼 등도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들은 나름대로 20여 유형에 이르는 각종 도구를 만들어 사냥과 채집을 했고, 이후 3만 년 동안은 그 방식에 따라 삶을 이어 나갔으나 유럽인이 섬에 도래하고 나서는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의 손에 전멸당했다.“


서사에서는 크게 공통된 두 주제가 흐른다. 첫째는 세상에 제각각 등장한 문명들이 어떻게 서서히 서로 접촉해 갔는가 하는 점이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경우 초기 단계부터 접촉이 있었다. 나아가 인더스강 유역과 중국으로 확대됐다. 유라시아 대륙의 양 끝은 애초에 간접적으로 일부 접촉이 있다가 종국에 모두가 서로를 직접 접촉할 수 있게 됐다.


유라시아는 어떤 지역도 장기간 고립을 겪은 적이 없다. 따라서 서로 다른 집단 사이에 어떻게 중대한 사상과 기술, 종교 등의 전파가 이뤄졌는가 하는 점이 두 번째 주제다. '세계사 1'에서는 이런 점이 각 문명의 독특한 문화적 요소보다 훨씬 중요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야말로 모든 지역의 역사가 서로 맞물려 있다는 사고에서 비롯된 통찰이다.


이따금 한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앞서거나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모든 독점은 무너지고 새로운 발견과 발명이 다른 사회로 전해졌다. 예컨대 중국은 기원후 600년을 기점으로 500년 동안 유달리 생산적인 면모를 보였다. 인쇄술과 종이, 나침반, 화약, 철기 기술 등이 다른 데보다 먼저 발명돼 나온 것인데 결국 모두 다른 지역까지 확산했다.


서유럽이 18세기 중엽부터 약 100년간 이끈 다양한 산업적 변화 또한 빠르게 세계로 퍼져 나갔다. 저자는 "그 속도가 한 차원 빨라졌다는 것은 곧 인간 사회의 통합이 더욱 증대되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통합의 증대는 세계 역사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또 하나의 현상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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