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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 '원조 보수' 김용갑, 떠남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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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정치인의 대명사,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2008년 총선 앞두고 정계 은퇴 '신선한 충격'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청명한 가을날씨를 보인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너머 하늘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청명한 가을날씨를 보인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너머 하늘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다./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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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시작하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008년 1월3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원조 보수’로 불린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이 총선 불출마와 함께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김 의원은 “지난날 정부에 있을 때부터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는데 이제 박수칠 때 떠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당시 정치권에서 보수 색채가 가장 뚜렷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김 의원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12년간 국회활동을 통해 국가안보와 국가정체성을 지키려 선봉에서 싸워왔고 정치권에서도 소신껏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있었다”면서 “북한에 대해 ‘퍼주기’라는 말을 제일 먼저 한 원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 의원은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을 산 인물이다. 정계를 은퇴한 지 10년도 넘었지만 여전히 여의도 정가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유는 후배들을 위해 깔끔하게 자리에서 물러나는 그의 선택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그는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일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 총무처 장관으로 근무했다. 그는 총무처 장관 시절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좌경화는 막아야 한다”는 발언으로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당시 야당은 문책을 해야 한다면서 날을 세웠지만 그의 언행은 굽힘이 없었다. 김 의원은 경남 밀양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총선에 처음 도전했던 지역은 서울 서초을이었다. 1992년 서초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22.1%를 얻고 낙선했다.


김 의원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당선돼 원내 입성했는데 그의 신분은 무소속이었다. 당시 밀양 국회의원 선거는 9명의 후보가 출마해 접전을 벌였다. 김용갑 무소속 후보는 28.55%를 얻어 당선됐다. 2위는 25.26%를 얻은 서정호 신한국당 후보였다.


19대 국회의원 배지(왼쪽)와 50년 만에 한글로 바뀐 현재 의원 배지.

19대 국회의원 배지(왼쪽)와 50년 만에 한글로 바뀐 현재 의원 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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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에도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로 당선된 것은 밀양 선거가 그만큼 치열했다는 의미다.


김 의원이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것은 2000년 제16대 총선이다. 경남 밀양·창녕 지역구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그는 54.7%의 득표율로 여유 있게 승리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 역시 밀양·창녕 지역구에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 50.3%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김 의원은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에 각을 세웠던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김 의원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일각에서 ‘5공·6공 용퇴론’이 불거지자 “현 정권의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정책에 맞서 힘을 모아야 한다”면서 정면으로 맞서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의정활동 기간 다양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됐다. 2004년 9월23일 국회 본회의 5분 자유발언 도중 쓰러져 의무실로 이송된 일도 있다. 김 의원은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의원총회에서 “보수 세력 목소리를 담아 한나라당에서 소리를 내주는 것이 지금까지 제가 해온 역할”이라며 “국보법 문제에 한나라당이 제 역할을 해달라는 전화가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온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2004년 10월8일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 현장에서 썩은 물을 녹차로 착각해 마시는 해프닝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박순자 한나라당 의원이 강원도 도암댐 수질 문제를 지적하고자 오염된 물을 국감장에 가져왔는데 그런 사실을 몰랐던 김 의원은 녹차인 줄 알고 마셔 화제가 됐다.


이념적으로 김 의원과 결이 다른 정치인들도 김 의원의 인간적인 면은 인정했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김 의원은 2005년 5월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 박탈 위기에 몰리자 법원 탄원서에 흔쾌히 서명해 눈길을 끌었다. 원조 보수 정치인이 진보 좌파 정치인을 도왔다는 반응이 뒤따랐다.


김 의원이 2008년 제18대 총선에 나섰다면 4선 고지에 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깔끔하게 물러나는 길을 선택했다.


“출마하면 또 당선될 수 있겠지만 한 지역에서 20∼30년 하면 아무리 잘해도 지역주민들이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김 의원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밝힌 내용은 뼈가 담긴 얘기였다. 임기 연장을 꾀하던 동료 다선 의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자신의 언행에 대한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런 내용었다. “좌파정권 비판에 앞장서 왔는데 혹시 저로 인해 개인적으로 상처를 입은 분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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