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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비싸니 그냥 읽고 갈게요" 서점의 도서관화, 해법 없나 [그것을 아시나요]

최종수정 2019.11.18 07:23 기사입력 2019.11.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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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 너무 비싸 사지 않고 읽고 가는 소비자들
대형 서점 중심으로 '독서 테이블' 등장
일부 소비자 책 구기고 촬영까지…'서점 민폐족' 우려
도서정가제 폐지해달라는 목소리도

서울 종로구 한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비치된 책들의 표지가 벌어져있다. 사진=허미담 인턴기자damdam@asiae.co.kr

서울 종로구 한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비치된 책들의 표지가 벌어져있다. 사진=허미담 인턴기자damdam@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허미담 인턴기자] [편집자주] 자칫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큰일로 여겨지는 '그것'을 포착해 전해드립니다.]


"책을 사려고 해도 구겨진 책이 많으니까 쉽사리 손이 안 가죠"


대형 서점을 중심으로 고객 편의를 위해 독서 테이블과 편안한 좌석 등을 설치하면서 많은 사람이 서점을 책만 구매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문화공간으로 여기고 있다.


대형 탁자로 마련된 독서 공간은 아이들부터 2, 30대 젊은 층, 장년층까지 빼곡히 앉아 아예 남는 자리가 없을 정도다. 사실상 '서점의 도서관화'다.


문제는 말 그대로 서점이 도서관처럼 되다 보니 책 품질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책에 침을 묻혀가며 읽는가 하면, 책장을 거칠게 넘기는 등 소위 '서점 민폐족' 행태를 보이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 서점서 책을 보던 20대 여성 A 씨는 "구겨지거나 찢어진 책 때문에 서점보다는 온라인 구매를 선호한다"며 "직접 서점에 나오는 이유는 책 내용을 대충 확인하려는 정도다"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한 대형서점 또한 상황은 비슷했다. 독서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20대 남성은 책을 펼친 채 페이지마다 사진을 찍고 책장을 휙휙 넘기며 마치 제 책인 양, 책을 읽고 있었다.


서울 마포구 한 대형서점에 비치된 책들의 표지가 훼손돼있다. 사진=허미담 인턴기자damdam@asiae.co.kr

서울 마포구 한 대형서점에 비치된 책들의 표지가 훼손돼있다. 사진=허미담 인턴기자damdam@asiae.co.kr



그러나 이런 '서점 민폐족' 이 나오는 현상 이면에는 고가의 책 값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책값이 비싸다 보니 테이블에 앉아 빠르게 책을 읽고 가거나 아예 도서관처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14년 모든 책에 대한 할인을 최대 15%(간접할인 5% 포함)까지 제한한 도서정가제 개정안과 연관 있다. 이런 도서정가제는 서점과 출판계에 만연했던 가격 할인 경쟁을 규제해 고사 상태였던 중소형 서점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다.


또 도서정가제 실시 책값이 다소 내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교보문고 납품도서 기준으로 신간 단행본 평균 정가는 2014년 19,101원에서 2015년 17,916원, 2016년 18,108원으로 1,091원(5.7%) 하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출간 후 1년 6개월이 지난 구간에 대해 출판사가 정가를 다시 매기는 방식으로 할인을 허용한 재정가 제도를 통해 10,285종의 책 가격이 30,099원에서 17,646원으로 평균 41.4%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렇게 내려진 책 가격을 실감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도서정가제 시행 2년이 지난 2016년 한국출판인회의 설문에 따르면 도서 가격을 일반 물가와 비교했을 때 '비싸다'는 응답이 59.2%로 '보통'(37.3%)이나 '약간 싼 편'(2.9%), '아주 싸다'(0.5%)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도서 구매 권수가 '감소했다'는 응답은 31.0%로 '늘었다'는 의견 13.4%보다 17.6%포인트 높았다.


서울 종로구 한 대형서점에서 방문객들이 책을 읽고 있다. 사진=허미담 인턴기자damdam@asiae.co.kr

서울 종로구 한 대형서점에서 방문객들이 책을 읽고 있다. 사진=허미담 인턴기자damdam@asiae.co.kr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책 가격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은 책을 사는 것보다 읽는 것을 택하고 있다.


대학생 B(22) 씨는 "교수님께서 과제로 독후감 같은 걸 요구하실 때가 있다. 그런 책은 내 취향과 맞지 않기에 사놓고 과제만 끝내면 바로 책꽂이에 넣는 편"이라며 "그럴 때 서점에 와서 필요한 부분을 찍어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C(29) 씨 역시 "책 가격이 사실 좀 비싼 편이다"라며 "주로 서점에서 마련해준 독서 테이블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에 의해 훼손된 책은 출판사와 서점과 합의로 반품된다. 그러나 출판사 입장에서는 반품이 쌓이다 보면 어려움을 호소할 수 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출판사에서는 반품을 받아주는 것이 원칙이다"라며 "진열이 오래돼서 색이 바래거나 운반과정에서 훼손되는 등 판매 가치가 떨어지는 책들은 반품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종합하면 비싼 책 가격에 책을 사는 것이 아닌 서점에서 그대로 읽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책 훼손 등 불량으로 반품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서점의 도서관화'를 일부에서는 반길 수 없는 이유다.


한편 지난 2일 도서정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가 20만 명을 넘어섰다. 청원인은 도서정가제 탓에 독서 인구가 오히려 감소하고, 책값이 오른 것은 물론 출판사 매출마저 줄었다고 주장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허미담 인턴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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