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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가을귀]여성 性이 수동적이라는 과학에 반기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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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절라 사이니 '열등한 성'

[이종길의 가을귀]여성 性이 수동적이라는 과학에 반기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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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자기 여자를 두고 바람 피울 필요가 있는가. 뉴사이언스(새로운 과학의 사고방식을 모색하는 개혁 운동)는 그렇다고 말한다.' '플레이보이' 1978년 8월호 표지를 장식한 기사 제목이다. 표제 옆에는 하얀 가터벨트를 하고 끈 달린 하이힐을 신은 여성 모델의 사진이 있다. 남성 상사에게 몸을 바짝 붙인 채 서 있다.


본문은 로버트 트리버스의 논문 '부모 투자'(1972)와 '성 선택'(1973)을 기반으로 한다. 대중의 성 행동을 이해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 견해다. "초파리 실험에서 무분별한 수컷의 열망과 까다롭고 수동적인 암컷의 태도라는 조합이 나타난다"고 밝힌 앵거스 존 베이트먼의 논문(1948)을 새롭게 해석한다.

"수컷은 양육에 참여하는 경우 최상의 방책으로 혼합된 전략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새끼를 키우는 암컷을 도우면서 자신이 도움을 주지 않아도 되는 다른 암컷과 짝짓기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수컷에게 바람 피우려는 열망이 가득하다는 주장은 인류학자 도널드 시먼스의 저서 '섹슈얼리티의 진화'(1979)에서도 나타난다. "남성은 새로운 성 상대를 찾고, 여성은 안정적인 일부일처 관계를 추구한다"고 적혀 있다.


이 견해는 책이 출간된 뒤 약 30년 동안 주류로 자리잡았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의 불륜 사건이 터졌을 때 클린턴을 옹호하는 기사에 인용되기도 했다. 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커가 주간지 '뉴요커'에 기고한 '소년은 소년이 될 것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대다수 인간의 욕구에는 오랜 진화론적 근거가 존재한다. 여성 50명과 성관계를 가졌던 선사시대의 남성은 자녀 50명을 낳을 수 있었고, 그의 취향을 공유하는 후손들을 가졌을 가능성이 더 크다. 여성의 경우 남자 50명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 해서 한 명하고만 잔 여성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낳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성은 정말 선천적으로 정숙하고 수동적일까. 과학 저널리스트 앤절라 사이니가 쓴 '열등한 성'은 과학자들이 많은 실험과 연구로 증명한 주장에 반기를 든다. 연구결과에 왜곡이 개입됐을 가능성을 찾고 숨겨진 편견을 파악한다.


이 책은 트리버스, 시먼스 등의 확고한 견해에 진화생물학자 퍼트리샤 고와티의 논문(2002)으로 맞선다. 진화심리학에서 신봉하는 베이트먼의 초파리 실험을 동일 조건으로 진행해 모순에 대해 지적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초파리를 유리병 속에 넣은 다음에 처음 5분 동안 암컷과 수컷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비디오 기록을 살펴본 결과 수컷이 암컷에게 접근하는 만큼 암컷도 수컷에게 접근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는 수컷이 암컷에게 관심을 가지는 만큼 암컷도 수컷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추론했다."


동일한 실험에서 상반된 결과가 나온 이유는 해석의 차이에 있다. 고와티에 따르면 베이트먼은 짝 한 마리도 없는 초파리를 과대평가했고, 짝이 한 마리 이상인 초파리는 과소평가했다. 성별에 따른 자손 수도 조직적으로 왜곡되게 추정했다고 의심한다.


모순되는 증거가 존재한다면 근본적인 이론부터 의심해야 한다. 그러나 고와티의 논문은 과학계에 널리 퍼지지 못했다. 시먼스, 트리버스 같은 저명인사들조차 고와티의 글을 읽지 않는다. 이들의 견해는 반대되는 증거가 나와도 건재하다. 저자는 인류학자 크리스틴 호크스의 말로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강조한다.


"당신이 진지하게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이런 것들의 토대가 무엇이며 어디서 왔는지를 알고 싶다면 생물학이 답이여요. 과학에 더 충실해야 합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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