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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의 원조 '켈로그', 20세기 미국의 식문화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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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業스토리]실수로 만든 밀 조각으로 요양소 환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켈로그 형제
'시리얼의 사업화' 선수 친 포스트社, 켈로그만의 '건강한' 이미지로 포스트 따라잡아
1900년대 초반 생소한 '광고·마케팅'으로 시리얼 시장서 독보적 이미지 구축

시리얼의 원조 '켈로그', 20세기 미국의 식문화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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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전 세계인들의 아침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시리얼'. 그 중에서도 켈로그(Kellogg)는 전 세계 시리얼 시장에서 40%를 점유하고 있는 시리얼 대표 브랜드다. 처음 시리얼을 개발한 켈로그는 1906년 설립됐는데, 당시만 해도 건강식 아침식사가 다양화되기 전이라 시리얼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 음식이었다.


시리얼을 생산하는 업체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쿠키, 과자 등 1600여 가지 종류의 식품을 생산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사 인터브랜드(Interbrand)에서 매년 선정하는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 2000년부터 꾸준히 랭크되고 있으며, 미국 경제 잡지 포춘(Fortune)에서 선정한 '존경할만한 세계의 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113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켈로그의 비결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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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탄생한 시리얼, 환자들의 입맛을 사로잡다

시리얼이 탄생한 건 켈로그가 설립되기 12년 전인 1894년이다. 당시 요양소를 운영하던 약사 겸 의사 존 하비 켈로그(John Harvey Kellogg)와 윌리엄 키이스 켈로그(Will Keith Kellogg)가 환자들을 위해 만든 밀 소재의 시리얼이 켈로그의 시작이다.


18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차가운 우유에 시리얼을 먹는 건 생소한 일이었다. 켈로그 형제 또한 시리얼을 만들고자 해서 만든 건 아니었다. 켈로그 형제는 당시 환자들이 영양가가 있으면서도 맛있는 건강식 개발에 힘을 쓰고 있었다. 건강식으로는 채식을 권했기 때문에 환자들은 식단에 대한 불만이 큰 상황이었다.


켈로그 형제는 환자들이 먹을 수 있는 소화가 잘 되는 빵을 개발 중이었다. 빵을 만들기 위해 롤러에 밀을 넣었는데, 우연히 롤러가 고장이 나 작동을 멈췄고 롤러 주변에 반죽이 말라 부서져 얇은 밀 조각(플레이크)이 생겨났다. 이 밀 조각을 불에 구워 요양소 환자들에게 시식을 시켰고 건강식이면서도 맛까지 좋은 시리얼은 호평을 얻어 판매까지 이어졌다.

100년 라이벌 켈로그 vs 포스트, 누가 시리얼의 원조?

그런데 이때 지금까지도 켈로그의 최대 라이벌로 꼽히는 '포스트(Post)'가 등장했다. 켈로그의 요양소 환자였던 찰스 윌리엄 포스트(Charles William Post)가 우연히 켈로그 형제의 시리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게 됐고,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 1895년 '포스텀 시리얼 컴퍼니'를 설립한 것이다. 포스트가 켈로그보다 9년이나 앞서 설립된 탓에 포스트가 시리얼을 최초로 개발한 회사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포스트는 켈로그의 아이디어를 선수쳐 사업화한 셈이다.

포스트는 켈로그 형제의 아이디어로 승승장구했고, 포스트를 따라 시리얼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1900년에는 요양소가 위치한 배틀 크리크 주변에만 24개의 시리얼 회사가 설립됐다. 켈로그 형제는 이보다 더 늦은 1906년에서야 켈로그를 설립했는데, 당시 의사였던 존 켈로그는 사업 의지가 없었고 동생인 윌리엄 켈로그가 단독으로 켈로그의 전신인 '배틀 크릭 토스티드 콘플레이크 컴퍼니(Battle Creek Toasted Corn Flakes Company)'를 세웠다. 1922년 '켈로그 컴퍼니(Kellogg Company)'로 사명을 변경했는데, 당시 시리얼을 함께 개발한 존 켈로그가 '켈로그'란 이름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긴 법정 싸움 끝에 윌리엄 켈로그가 상호에 대한 권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미 성공 궤도에 있었던 포스트보다 늦게 출발한 켈로그는 포스트와 다른 전략을 구사하며 포스트와 경쟁했다. 포스트는 간편함을 강조한 반면, 켈로그는 환자들의 아침식사로 시작한 만큼 영양가 있는 한 끼를 강조했다. 1923년에는 제품과 광고에 뉴욕 콜롬비아 대학 영양사로 근무하던 메리 이사벨 바버(Mary Isabel Barber)를 영입해 건강한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면서 시리얼 시장에서 포스트와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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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광고와 마케팅까지 더해졌다. 현재 광고나 마케팅은 식음료 회사에서 필수적이지만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광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창업자 윌리엄 켈로그는 '광고'에 거액을 투자했다. 연간 100만 달러(약 11억7000만원) 이상을 판촉 비용으로 쏟아부었고 신문과 잡지에도 광고를 실었다. 1912년에는 뉴욕 타임스퀘어에 높이만 108피트(약 33미터)에 달하는 옥외광고를 설치했다. 참고로 1910년대에 옥외광고를 하는 기업은 코카콜라뿐이었다.


1950년대부터는 국내에서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요'라는 광고로 히트를 친 '말하는 호랑이 토니'로 캐릭터 마케팅도 시작했다. 주로 시리얼을 즐겨 먹는 소비자가 어린이라는 점을 고려해 친근한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호랑이 캐릭터를 만들어 광고 전면에 내세웠다. TV 광고는 물론 잡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포스트는 켈로그의 아이디어 덕에, 켈로그는 포스트를 따라잡기 위한 전략으로 서로 윈윈(Win-Win)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아침식사 메뉴가 점심이나 저녁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간편한 아침식사' 시리얼의 등장으로 미국의 식문화마저 바꿨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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