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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미국공장'의 희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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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경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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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개봉된 다큐멘터리 '미국 공장'은 세계 주요 언론 대부분이 리뷰를 실은 화제작이다. 서브프라임 위기가 절정에 달한 2008년 12월 오하이오주 데이턴시 외곽에 소재한 GM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자 졸지에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이 모여 기도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6년 뒤 이 지역은 실업률이 12% 이상으로 치솟았다. 그런데 중국 최대 자동차용 유리 생산기업 푸야오그룹이 폐쇄된 GM 공장에 '푸야오어메리카'를 설립해 현지인을 고용한다. 이는 GM이 철수하면서 1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0가구가 실직한 이곳에 큰 희망을 안겨줬다. 오하이오주의 대표적 러스트벨트(제조업 공동화로 쇠락한 지역)에 모처럼 활력이 일어났다. 현지인과 본사에서 파견된 200명의 중국인 숙련 기술자 사이에 전례가 없던 인적 교류도 일어났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미국인 노동자들은 GM 시절 받던 급료(시간당 29달러)의 절반도 안 되는 박봉(시간당 12.84달러)과 열악한 근로 조건을 불평한다. 한편 높은 강도의 노동에 익숙하고 가족도 없이 홀로 현지 공장으로 파견을 온 중국 기술자들과 경영진은 "노조를 만들겠다"는 미국인 노동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노조 결성은 좌절됐고, 주도하던 노동자들은 해고당했다. 결국 이 회사를 적자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로봇이었다.


이 다큐 필름은 양쪽의 입장을 진솔하게 보여주면서 시청자가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언론은 이 다큐 필름을 두 나라의 문화적 충돌을 보여준 '희비극(喜悲劇)'이라고 평했다. 미국 노동자들이 느리고 서툴다고 불평하는 중국인 기술자들에게 중국인 경영진은 "우리가 그들보다 낫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들을 지도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은 두 나라 사람들이 서로 불안하게 의존하는 데서 비롯한다. 미국인들은 일자리를 위해 더 많은 투자를 원하지만 중국 경영진은 미국인 노동자들이 생산성을 높여 회사가 이윤을 내기를 원한다. 미국인 노동자들이 낮은 급료를 불평하는 것처럼 중국 경영진은 낮은 생산성에 불만이 있다.

중국보다 분명히 훨씬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급료를 받고 있을 미국인 노동자들이 불평하는 장면은 이해는 되지만 딱한 느낌이 든다. 글로벌 경제에서 자본은 마치 발이 달린 것처럼 이윤을 쫓아 어디로든 쉽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푸야오는 당시 높은 인건비에도 낮은 세금 때문에 미국에 투자했다. 낮은 생산성으로 골치를 썩던 회사는 결국 로봇으로 해결했다. 결국 이들의 처우가 더 나빠질 수는 있겠지만 개선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 공장'에 나오는 현지 노동자들은 딱히 인종이나 남녀노소의 구분도 잘 되지 않는다. 그저 이 시대에 존재하는 산업 사회의 낙오자라는 인상을 받게 한다. 자동화는 '고용'과 관련해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단어다. 자동화가 동반하는 사회ㆍ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자동화로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이 기계보다 비교우위를 가지는 새로운 영역을 창출한다. 그 결과 자동화가 '구(舊)노동'의 수요와 소득을 줄이는 대신 '신(新)노동'의 수요와 소득을 늘리는 것이다.


영화 말미에 나이가 지긋한 노동자가 "다시는 (GM에서 일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라고 탄식하는 장면은 구노동의 고달픈 삶이 단지 미국만이 아닌 글로벌 경제의 문제라는 것을 암시한다. 자동화로 구노동이 늘어날 때 일어나는 갈등은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김경수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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