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 유출, 눈뜨고 당한다]2. 기술 유출 방관하는 '솜방망이 처벌'

기술유출 처벌 15년 이하 징역·15억원 이하 벌금인데
3년간 경찰 기술유출 수사 재판완료 104건 중
징역형 5건뿐…집행유예·벌금 90%

"외국기업, 거금 주고 자리 보장…처벌 약한데 누가 마다하나"
재판에 시간 허비하다 '기술 역전' 당할 수도

빼가면 수억원, 걸리면 벌금…기술유출 부추기는 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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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기술유출을 21세기 '매국'이라 부르는 것은 기술유출이 곧 '국부유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재판에 넘겨진 기술유출사범 대부분은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으로 풀려나고 있다.


6일 아시아경제가 경찰청으로부터 입수한 최근 3년간 기술유출 수사사건 재판 결과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91건의 사건이 기소됐다. 이 가운데 104건이 완료됐는데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은 단 5건(4.8%)뿐이었다. 매년 수백 건의 기술유출 사건이 발생하지만 정작 실형을 사는 기술유출사범은 한해 1~2명에 불과한 것이다.

대부분은 집행유예(51건ㆍ49.0%) 또는 벌금(41건ㆍ39.4%)형을 받았다. 수사 단계에서 수사기관이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구속을 시켰더라도 법정에서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즉시 풀려난다. 이들이 유출한 자료를 가지고 외국 기업 등과 접촉할 길을 다시 열어주는 셈이다.


2010년 최초로 6개 지방청에 산업기술유출수사팀을 발족한 경찰은 2017년 전국 지방청에 전담팀을 확대 설치했다. 10년 가까이 기술유출 수사만 해온 전담 경찰관이 있을 정도다. 경찰은 올해 3월 수사팀 명칭을 '산업기술보호수사팀'으로 변경하는 한편 전담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경찰 수사 이후 재판이 완료돼 무죄 판결이 나온 비율은 최근 3년간 7건(6.7%)에 불과하다. 법리적으로 해당 기술이 '영업비밀'이고 '침해행위'가 발생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 비춰보면 낮은 무죄율이다. 2017년 기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기소돼 1심 판결이 나온 167건 중 무죄가 45건(26.9%)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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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솜방망이 처벌'이 가능한 이유는 낮은 양형기준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행 부정경쟁방지법과 산업기술보호법은 국내 기술 등 영업비밀을 해외로 유출할 경우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법정에서 실질적 형량을 결정하는 기준인 '양형위원회 양형기준'은 영업비밀 해외유출 사건에 대해 징역 1년에서 3년6개월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초범이라거나 진지하게 반성하고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등 감형요인이 적용되면 이보다 형량은 더 낮아진다. 대부분 사건에 집행유예 또는 벌금 판결이 내려지는 배경이다.


실제 2016년 11월 국내 대형 조선업체 두 곳에 취업한 뒤 핵심기술을 이메일과 USB로 빼내 인도로 유출한 인도 국적 A씨는 수사 단계에서 구속됐으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석방된 뒤 출국했다. 올해 1월에는 국내 기업이 7년 동안 개발한 환경설비 기술을 빼내고 퇴사한 뒤 2억원을 받는 대가로 중국 업체에 전달한 B씨가 구속 기소됐으나 1심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찰이 나서서 정부에 처벌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청은 지난해 하반기 중소벤처기업부와의 '기술탈취 근절 TF회의'에서 "기술유출 사건에 대한 처벌 강화와 관련 형사사건에 적용할 수 있는 피해액 산정 기준ㆍ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솜방망이 처벌이 기술유출 유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은 업계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지배적이다. 한 기술유출 피해기업 대표는 "일부 외국 기업에서 기술을 빼오면 2억~3억원씩 주고, 자리도 보장해준다고 하면서 내부인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며 "재판 받고 집행유예나 벌금으로 풀려난 뒤에 바로 출국하면 되는데 누가 마다하겠나"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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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진행되는 사이 피해기업들의 추가 피해도 우려된다. 기술유출 재판은 사안이 복잡해 1심 재판에만 짧게는 1년가량 소요되고, 3심까지 가게 된다면 7년 이상 허비하는 경우도 있다. 그 사이 온전히 기술개발 및 상용화에 집중하지 못한 피해 기업에 비해 기술유출을 통해 자료를 전달받은 기업이 앞서나가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거나, 시일이 지남에 따라 기술의 가치가 '감가상각'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더욱 전문적이고 신속한 재판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기술유출의 심각성은 공학적 접근을 통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며 "법원이 산업 및 기술유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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