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취미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에서 '취미(趣味)'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한 시기는 1900년 전후

안창호 선생, 흥사단 가입 이력서에 '동지들과 경치 즐기기'를 취미로 기록


한국인과 일본인 관람객이 창경원에서 벚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서울 20세기:100년의 사진기록'

한국인과 일본인 관람객이 창경원에서 벚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서울 20세기:100년의 사진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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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내가 아직 소개팅 시장에 매물로 존재하던 시절. 금요일 혹은 토요일 저녁 강남에 마늘 맛이 많이 날 것 같은 스테이크집이나 음식은 반지름 15cm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접시는 반지름이 60cm는 될법한 크림파스타집의 풍경은 늘 비슷했다. 테이블엔 남녀가 각각 앉아 있고 맞추기라도 한 듯한 줄은 쭉 남자, 한 줄은 쭉 여자가 위치해 있었다. 여자는 보통 등받이가 푹신한 의자, 남자는 등받이가 딱딱한 의자. 마치 같은 연애나 매너 학원에서 우르르 배출된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 그렇게 소개팅의 성지(?)라 불리는 곳에서 나도 플레이어의 한 사람인 주제에 이상하게 주위 소리가 참 잘 들렸다. 어느 테이블에서나 들려오는 같은 질문소리. “취미가 뭐예요?” 아마 다수는 ‘영화감상’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무한도전 보는 거라고 답변한 사람도 꽤 있었던 것 같다. 1990년대에는 인터넷이라고 많이 대답했다지.

그렇게 취미로 시작해 공통점 찾기를 거친 남녀는 어느새 어색함이 없어진다. 어색함이 없어진 게 해피엔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지만 취미는 입시, 취업 원서에도 떡하니 한 칸 차지하고 있었다. 면접 때도 종종 질문으로 받아본 적도 있다. 취미가 이렇게 대화의 소재로 활용될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리라. 현대인은 누구나 하나쯤은 취미가 있고,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몰입하는 것 하나쯤은 있다. 현대인은 아니지만 보노보노에게도 물에 떠있는 취미가 있다. 여기에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과는 더 잘 지낼 수 있다는 경험칙 혹은 믿음이 더해져 취미를 사람을 파악하는 데 쓰게 됐다. 우리는 언제부터 취미라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살게 됐을까.


현대문학을 전공한 문경연 박사가 쓴 '취미가 무엇입니까?-취미의 일상 개념사와 한국의 근대'는 '취미'라는 일상 개념이 한국 근현대사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당대의 기사, 잡지 등을 통해 분석한다. 한국에서 취미(趣味)라는 어휘가 출연한 것은 1900년을 전후한 때였다. 서구에서 유래한 취미(taste)는 예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미적 능력을 의미했다. 취미는 교양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였다. 이 개념을 일본이 수입해 취미(趣味)로 번안해 조선에 전달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긴 하지만 저자는 "취미 개념의 유입 경로와 사례를 실증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서구의 taste가 일본을 통해 한국에 '취미(趣味)'라는 용어로 정착했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학문적 태도"라고 말한다. 단어자체는 서구-일본-조선으로 전달된 건 맞지만 이미 우리 조상들에게는 정취(情趣), 풍취(風趣), 흥취(興趣)라는 전통적인 예술 개념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취미는 바둑, 필치는 정염 '매일신보' 1927년 4월 17일. 작가 현진건의 이력과 대표작, 사숙한 해외작가, 좋아하는 작품과 더불어 취미를 언급하고 있다.

취미는 바둑, 필치는 정염 '매일신보' 1927년 4월 17일. 작가 현진건의 이력과 대표작, 사숙한 해외작가, 좋아하는 작품과 더불어 취미를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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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는 취미(趣味)는 등장하지 않지만 취미(臭味)라는 단어는 50회 이상 등장한다고 한다. 또 서양의 taste와 비슷한 개념으로 우리 조상들은 풍류(風流)를 써왔다. 우리가 상상하는 풍류는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계곡이나 정자 같은 곳에서 기생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이는 것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지만, 원래 풍류란 노장과 도가 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동양 미학의 개념이다.


1910년대 취미는 식민권력의 통치 전략과 교육 방침에 선택적으로 활용됐다. 즉, 국가 기구의 통치전략으로서 취미가 보급됐다. 이때 일본이 강조하던 행사가 운동회였다. 여기에 신문들은 벚꽃놀이를 하는 여성의 모습이나 동물원과 우이동의 장관 등을 곁들인 기사를 내보내 독자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제국의 기호 '사쿠라'를 내면화했다. 이후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오락과 재미를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저자는 이 같은 움직임이 "1919년 3ㆍ1운동 이후 정치적 좌절의 경험과도 연동하는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정치적 상처를 받은 대중이 정치와 무관한 일상의 영역에서 욕망을 분출하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1920년대 대중이 가장 열광하던 취미는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영화였다. 1926년 2월 한 달간 경기도 경찰부 보안과에서 검열을 거친 서양 영화가 무려 249편에 달했다고 한다. 이 당시에는 영화관이 50개에 불과했다. 영화산업진흥위원회 2018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극장 수는 483개(스크린 2937관)고 한 해 동안 국내시장에 개봉한 해외영화는 1192편(실질개봉 534편)이니 얼마나 열기가 대단했는지 비교 짐작할 수 있다.


[이근형의 오독오독] 도산 선생의 흥사단 이력서에도 취미란이 있었다 원본보기 아이콘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민족운동단체인 흥사단 가입 이력서에 취미를 적는 항목이 있다는 점이다. 항목은 ①출생시 ②출생지 ③거생지 ④직업 ⑤학예(기독교신학ㆍ법학 등 전공기입) ⑥종교 ⑦단체(가입한 단체) ⑧최장기(장기ㆍ특기) ⑨소긍(즐기는 것) 등이었는데 여기서 소긍(所肯)이 취미의 다른 말이다. 저자가 여러 통의 가입 이력서를 확인한 결과 산보, 독서, 화초 정구, 음률, 무예, 운동 등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안창호 선생은 소긍란에 "관유산하(觀遊山河) 반동지(伴同志)하여 관유산해(觀遊山海) 서정(敍情)"이라고 기입했다. 취미로 동지들과 함께 산ㆍ강 바다의 경치를 즐기는 것을 꼽았다. 안창호 선생은 언더우드가 세운 구세학당에서 서구식 교육을 받은 근대적 지식인이지만 취미는 선조들처럼 풍류, 산수유람에 가까웠다.



1913년 자필로 작성된 한 흥사단원의 가입 이력서. '소긍(所肯-위쪽 왼쪽 네번째 위치)'은 취미의 다른 표현이다.

1913년 자필로 작성된 한 흥사단원의 가입 이력서. '소긍(所肯-위쪽 왼쪽 네번째 위치)'은 취미의 다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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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이후 취미는 개인 프로필이자 조건이 됐다. 일반인이 출신학교, 직업 등과 더불어 취미를 밝히는 것이 근대적 사교 매너로 정착했다. 취미가 나와 타인을 차별화하는 식별 요소이자 취미=인격 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생겨났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연애와 배우자의 조건으로 취미를 꼽게 됐다. 상상해본다. 1920년대 종로 단성사 앞 어느 찻집에서 만난 모단걸, 모단보이. 그들도 2010년대 초반 나처럼 어색한 인사로 대화를 시작했겠지. 그리고 적당한 자기소개, 날씨 얘기, 오는 길이 어땠다는 둥 일단 준비한 얘기가 끝나면 아마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취미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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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형의 오독오독] 도산 선생의 흥사단 이력서에도 취미란이 있었다 원본보기 아이콘

취미가 무엇입니까? / 문경연 / 돌베개 / 1만8000원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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