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마실 다녀오시네
낙타처럼 등 내밀고
햇볕 한 짐 태우고 오시네
할머니 굽은 등 펴시네
와르르 햇볕 쏟아져
우리 집 마당 눈이 부시네
■ 이 시 참 재미있다. 재미있고 환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행복해진다. 쉽기도 정말 쉽다. 쉬우니까 나도 이런 시 금방 하나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할머니' 대신 '할아버지'를 넣어 보기도 하고, '마실' 대신 '장'을, '햇볕' 대신 '봄비'를 적어 보기도 한다. '봄비'라고 적었으니까 "우리 집 마당" 다음엔 무어라고 써야 할까 한참을 고민한다. 잘 떠오르질 않는다. 괜히 심통이 난다. 차라리 그럴 듯한 수식어나 멋진 구절 하나 얹을 데 어디 없나 두리번거린다. 그러느라 반나절이 이리저리 굴러가 버렸다. 그러다 겨우 다시 깨닫는다. 이 시는 더할 수도 덜어 낼 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시는 그렇게 '딱 거기'까지만 쓰는 거다. '딱 거기'가 어느 만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하튼 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거기'까지만 쓰고 그만 쓰는 거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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