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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뉘우치지 않았던 '킬링필드 주범' 폴 포트 정권 2인자 사망

최종수정 2019.08.05 08:00 기사입력 2019.08.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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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1970년대 캄보디아에서 양민 200만명을 학살한 '킬링필드'를 주도한 폴 포트 정권의 2인자 누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이 4일(현지시간) 사망했다. 향년 93세.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체아 전 부서기장은 이날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폴 포트의 그림자'로 불리는 그는 유엔과 캄보디아가 함께 설립한 크메르 루주 전범재판소에서 반 인륜적 범죄 등으로 기소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해에도 소수민족에 대한 대량학살죄로 또 다른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불복해 항소심을 진행 중이었다.


체아 전 부서기장은 급진좌익 무장단체 크메르 루주에서 반인륜적 대량 학살을 주도한 폴 포트 정권의 2인자이자, 생존자 중 최고령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포트 정권의 고위층 생존자는 키우 삼판(88) 전 국가주석만 남았다.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 또한 체아 전 부서기장과 함께 종신형을 선고 받은 인물이다.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 루즈의 짧은 통치기간인 1975~1979년 즉결 처형과 아사, 질병 등으로 사망한 사람만 200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직 크메르 루즈 보안책임자 및 교도소장에 따르면 체아 전 부서기장은 정권 내에서 '배신자'로 의심되는 이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감독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프놈펜 투올 슬렝 형무소에서 거짓 고백을 하도록 고문당했고, 이후 처형됐다. 최소 1만4000명이 투올 슬렝에 들어갔으나 살아남은 이는 겨우 7명이라고 WP는 덧붙였다.


특히 WP는 체아 전 부서기장이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자신의 죄를 인정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2007년 체포 전 캄보디아의 한 기자가 촬영한 한 영상에서 그는 "감히 우리의 결정이 옳았다고 말하겠다"며 "만약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면 나라를 잃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많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며 "우리는 나쁜 사람만 죽였을 뿐, 좋은 사람은 죽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발언이 담긴 동영상은 그의 재판에서도 공개됐었다.


BBC는 "적을 부숴버리지 않았다면 오늘 캄보디아는 없을 것"이라는 그의 발언을 인용해 체아 전 부서기장은 자신을 애국자, 신념을 가진 소유자로 인식했지만, 역사는 20세기 최악의 범죄 중 하나로 국민 4분의 1을 사망하게 한 무자비한 지도자로 그를 기억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1926년 7월7일 캄보디아 서부 바탐방지방에서 태어난 체아 전 부서기장은 태국 방콕에서 고등학교와 대학 교육을 받았다. 1950년 태국 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이후 베트남 주도의 인도네시아 공산당에 합류했고 프랑스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는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캄보디아로 돌아왔다. 폴 포트를 만난 시기는 베트남 북부지역에서 2년간의 훈련을 거친 이후다. 그는 1960년 크메르루즈 부서기장으로 선출됐다. 이 조직은 1977년에야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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