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서정리/최윤빈
그는 내가 사는 동네에 오면 꼭 우동을 먹고 간다
살아 있는 게 부끄럽다는 그와 나란히 앉아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수술을 하면 왼쪽으로도 들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도 잘 살았다고 한다
옆 테이블의 아이들은
우산 두 개를 나란히 상에 기대 놓는다
먼 곳의 지명을 떠올리다
그의 왼편에 앉는 나를
너무 돌아만 보면 고개가 아프다며
그는 이해하고
저녁을 헤아리느라
한 바퀴를 돌아본다
아이들은 우동 가락을 우물거리며 집으로 간다
머리가 조금 젖은 채로
지난밤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내게
그는 쓰고 있던 모자를 덮어 주었고
서정리로 가는 버스를 배웅하고
집으로 걷는데
집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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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그'는 '나'와 어떤 사이인 걸까? 좀 희미하긴 하지만, "지난밤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내게" "그는 쓰고 있던 모자를 덮어 주었"다는 문장들을 두고 생각해 보면, 일단 '내'가 가고 싶은 '집'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덮어 준 '모자'는 '집'을 대신하는 물건 정도로 여길 수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그'는 '내'게 '집'과 같은 사람이다. 혹은 어쩌면 '집'은 '내면'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는 곧 '나'인 셈이다. "살아 있는 게 부끄럽다"라는 고백은 어떤 윤리적 판단과는 무관하게 미적 동력으로 재소환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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