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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 역사적 만남 이뤄진 '판문점', 원래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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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피난가던 선조 위해 널빤지 모아 다리 만든 곳
6.25 정전협정 당시 지명 '널문리'를 한자로 '판문점'이라 바꿔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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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지난 주말 6.25 전쟁 정전협정 66년만에 사상 최초로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역사적 만남을 가지면서 판문점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판문점은 6.25 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간 휴전회담 및 정전협정이 조인된 장소로 양자간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한 곳임과 동시에 남북분단의 상징적인 장소로 인식돼있다.


그러다보니 주로 6.25 전쟁 및 분단과 얽힌 장소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실제 이 곳의 지명을 결정하게 된 요인은 6.25 전쟁보다 수백년전 벌어진 임진왜란에 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임진강을 건너 피난을 가려던 도중,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자 백성들이 대문을 떼와 널빤지처럼 펼쳐서 이를 이어 긴급히 부교를 만들었으며 이를 이용해 선조가 임진강을 건넜다는 전설이 있다. 이에따라 조선시대 이후 계속 널문리라 불렸으며, 이것을 정전협정 당시 한문으로 번역해 판문점(板門店)이 됐다는게 현재 알려진 정설이다.

임진강의 모습(사진=한탄강 지질공원 홈페이지/www.hantangeopark.kr/)

임진강의 모습(사진=한탄강 지질공원 홈페이지/www.hantangeopar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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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 '판문'이란 지명은 기록상에서 임진왜란 때보다 훨씬 앞서 등장한다. 고려사 및 조선왕조실록에 이 지역은 '개성부(開城府) 판문평(板門平)'이라 소개돼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이전부터 이 지역은 판문이란 지명으로 불렸음이 확인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 부근에 널문다리, 즉 판문교(板門橋)가 존재했었기 때문에 판문평이라 불렸다는 설과 널빤지로 대문을 만들던 풍습이 있어 널문리라 불렸다는 설 두가지로 나뉜다.


이로 인해 임진강을 건널 당시 널빤지로 만든 부교를 건넌 임금이 선조가 아니라 고려시대 공민왕일 것이란 설도 있다. 공민왕은 선조와 반대로 대륙에서 침략해온 홍건적의 침탈을 피해 경상도 안동까지 파천하게 되는데, 이때 임진강을 비롯해 여러 강을 건너 피난을 간 바 있다. 공민왕의 파천 당시 공민왕 일행이 안동으로 들어서기 위해 안동의 송야천 입구에서 백성들이 직접 몸으로 부교를 만들었다는 이른바 '놋다리밟기' 풍습이 아직 안동지역에 남아 있기도 하다.


6.25 전쟁 정전회담 당시 판문점의 모습(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25 전쟁 정전회담 당시 판문점의 모습(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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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시기는 다르지만 국가적 전쟁과 임금의 몽진이란 비상상황에 만들어진 널문리란 지명은 6.25 전쟁까지 이어지다가 정전협정이 맺어지면서 판문점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됐다. 원래 1951년 10월 정전회담이 처음 열리기 시작할 때 당시 38도선 상에 위치한 개성이 회담장소로 점찍어졌지만, 이곳이 당시 공산군 측 점령 지역이란 이유로 여기서 좀더 떨어진 판문점이 최종 회담장소로 낙점됐다. 당시 정전협정이 맺어진 판문점 건물은 지금 판문점보다 북쪽으로 약 1.5킬로미터(km) 정도 떨어진 장소에 위치해있다.

이름이 판문점으로 바뀐 이유는 1951년 6.25 전쟁에 개입한 이후 정전협정 대상자가 된 당시 중공군을 위한 배려였다. 널문리라는 고장이름을 한자로 판문점이라 쓰고, 이후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2년 가까운 시간동안 본회의 159회 등 총 765회에 이르는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벌어졌다. 당시 널문리에는 초가집 4채와 구멍가게 하나, 콩밭 몇개가 전부였다고 알려져있으며 최초 휴전회담은 이곳 야전에 천막을 치고 시작됐다고 한다.


판문점 일대 공동경비구역 안내도(자료=통일부 홈페이지/https://dialogue.unikorea.go.kr)

판문점 일대 공동경비구역 안내도(자료=통일부 홈페이지/https://dialogue.unikore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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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이후 판문점 일대는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지정됐고, 쌍방간 행정관할이 미치지 않는 공백지역으로 남게됐다. 1976년까지는 경계선 없이 양측 경비병과 출입자들이 자유로이 통행하는 분위기였으나, 1976년 8월 발생한 판문점 도끼 살인사건 이후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적용, 관할구역이 분할됐다. 이후 6.25 전쟁 당시 어느 한쪽에도 군대를 파병하지 않은 중립국인 스웨덴, 스위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국가들이 '중립국 감시단(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을 구성해 스웨덴과 스위스가 남한측을,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가 북한측에 감독위원을 배치, 휴전상태를 감시했다. 하지만 구소련 해체 이후 북한측 중립국 감독위원들은 체코가 1993년, 폴란드가 1995년 각각 북한 당국에 의해 추방되면서 북한측엔 현재 중립국 감독위원이 없는 상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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