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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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을 위하는 학교라면 이러면 안되잖아요."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A 중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이 학생은 학교를 향해 울분을 토했다. 남녀공학인 A 중학교는 현재 교내에서 발생한 '불법촬영(몰래카메라) 사건'을 수습 중이다. 하지만 학교는 사건 초기대응부터 사후조치까지 비상식적인 모습만을 보이며 학생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올해 3월 3학년 B군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같은 반 여학생을 몰래 촬영했다. 학교는 B군에 대한 학생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어, 피해 학생하게 사과문을 작성하도록 시켰다. 그러나 학폭위가 열리기 전 B군의 부모는 휴대전화를 파기했다고 학교에 전했고, 학교는 이 설명만을 듣고 증거물이 없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B군의 사과문은 그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았다. 학교는 B군과 관련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졌다. "나도 피해자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조성됐고, 급기야 사건 발생 3개월 만에 한 학생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B군이 3월에 이어 6월 학원에서도 불법촬영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이후 학교의 대응에 학생들의 실망감은 커졌다.

학교는 지난달 20일 청와대 청원을 작성한 학생을 불러 추궁한데 이어 차례로 학생들을 불러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너희를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할 수 있다"며 "소문을 퍼뜨린 게 아니라면 메신저 대화내용을 보여달라"고 했다. 조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선생님의 강압적 태도가 너무 무서웠다"며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학교는 이렇게 확보한 대화내용을 인쇄해 일부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작성한 대화내용임을 인정하는 서명까지 받았다. 피해자 보호ㆍ재발방지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심지어 학생들이 붙인 '불법촬영 근절 포스터'를 학교는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라며 수거해 가기도 했다. 복수의 학생들의 증언이다.


서울시 교육청이 배포한 '학교 성폭력 사안 처리 절차 및 유의사항'에 따르면 교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학교는 무조건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는 수사기관 신고 없이 자체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했다. 수사기관에 신고하면 관련 사실이 외부에 유출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취재에 나서자 학교 관계자는 "기사를 쓰면 기자가 다칠 수도 있다"고 협박하며, 보도를 막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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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번 논란은 학교가 자초했다. 학생 대부분이 고화질 카메라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지금 불법촬영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학교의 모습은 구태(舊態) 그 자체였다.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나 방식은 비상식적이었고, 학생들에게 전혀 교육적이지 않았다.


이승진 사회부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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