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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기수문화에서 상호존중의 문화로

최종수정 2019.07.01 11:40 기사입력 2019.07.0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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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기수문화에서 상호존중의 문화로

얼마 전 정부가 윤석렬 서울중앙지검장을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한 뒤 검찰 안팎에서는 검사장급 연수원 동기나 선배들 30여명의 줄사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미 3명의 선배 기수가 옷을 벗기로 했다. 다만 그동안 검찰총장 후보자의 동기와 선배 기수가 한꺼번에 용퇴하는 검찰의 관행을 고려하면 다소 의외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처럼 기수를 기준으로 승진과 사퇴가 결정되는 등 입사연도를 인사의 주요 요소로 삼는 것을 기수문화라고 한다. 이는 권력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나이의 많고 적음 따위를 중요시하는 사고방식인 서열주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수문화나 서열주의는 고시기수와 같은 공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학교 등 민간에도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모든 것이 다 그렇듯 기수문화에도 명암이 있다. 먼저 그것이 가져오는 장점을 보자. 첫째, 인사에 있어서의 예측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사권자는 언제든 하위 기수에서 발탁을 통해 우호적 인물을 등용해 조직에 긴장을 주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기수문화는 인사 대상자들에게 이런 불확실성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성실히 자기 몫을 하는 한 무난히 승진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주는 것이다. 둘째, 조직의 세대교체와 신진대사를 원활히 한다는 것이다. 주로 용퇴와 관련된 것이지만 동기나 후배가 상급자가 되면 동기나 선배들이 조직을 떠남으로써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좀 더 젊은 인사들로 조직이 채워져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할 수 있다.

특히 사법문화에서 기수주의 용퇴문화가 강한 것은 조직을 떠난 후에도 변호사 직역을 수행할 수 있다는 특성과 함께 종래 전관예우를 통해 경제적 보상이 가능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검찰 조직은 특수한 측면이 있다. 소위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것이다. 검찰이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전 검사가 상명하복의 관계를 맺고 검찰사무를 집행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을 통해 검찰사무 처리에 신속성ㆍ통일성ㆍ공정성을 기하고 개별 검사의 기소독점권한의 남용을 막고자 했다. 다만 검사가 정의와 진실 추구 의무보다는 상사의 명령에 구속되어 독립성을 상실하게 되는 등 폐해가 나타나자 2004년 검찰청법이 개정된다. 이에 따르면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법 제7조 제1항이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 감독에 따르도록 한다'로 바뀌었다. 또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제1항의 지휘ㆍ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 여부에 대하여 이견이 있는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제7조 2항이 신설되는 등 이 원칙이 상당히 완화됐다.


그러나 요즘 이런 기수문화는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기수문화는 기본적으로 능력에 의한 경쟁을 제약한다.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채용, 배치, 승진, 교육훈련, 보수 등에 차별을 둠으로써 개인 상호간에 경쟁을 통해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되어 조직의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나이, 학력, 입사연도 등 생래적이거나 이미 기성의 자격으로 인해 향후 노력을 통한 발전가능성을 차단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기수문화와 서열주의는 극복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다. 최근 민간에서는 은행 지점장을 물러나 후배 지점장 밑에서 업무를 하는 경우도 있고 로펌 등 전문가 조직에서는 팀장과 팀원을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지금의 리더십은 권력에 따른 상명하복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융화를 통한 최대 실적 달성이라는 실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수문화의 개선방향은 선배의 경험과 지식에 대한 존경과 후배의 의욕과 패기의 인정을 토대로 하는 상호존중과 질서의 문화라고 할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 사이버법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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