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베트남·중국 두 갈래 길
[아시아경제 베이징=박선미 특파원]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국제공항 안에서는 한국기업의 광고판을 쉽게 볼 수 있다. 롯데, 효성, 신한은행 등 공항 곳곳에 큼지막하게 걸려져 있는 한국기업 간판들은 얼마나 많은 한국기업들이 베트남 시장에 진출해 기회를 찾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베트남은 저렴한 임금, 풍부한 노동력, 적극적인 투자유치 등의 환경을 갖추고 한국 기업에 '러브콜'을 보냈던 과거 중국의 모습과 닮아 있다. 한국 기업 간판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기 시작하는 지금의 중국과 대조적이다.
공항에서 시내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대사관 밀집지역에는 하노이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롯데센터하노이가 있다. 롯데호텔, 롯데백화점, 롯데마트가 한데 모여 있는 곳이다. 중국에서는 짓다가 멈춰선 롯데타운이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하노이에서 '롯데'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롯데센터와 큰 길을 마주하고 한국자본이 들어간 하노이의 첫 5성급 호텔인 대우호텔이 있고 다른 방향의 길 건너에는 CGV가 입점해 있는 쇼핑몰이 있다. 군데군데 한국계 은행과 음식점이 눈에 띠고, 공사 현장에는 두산의 로고가 선명한 굴삭기가 움직이고 있다. 베이징 왕징지역에 많은 한국인들이 모여살면서 한국의 분위기가 묻어 있듯 하노이에도 한국 기업의 진출이 점점 늘면서 한국적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
한류가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 촉매제가 되고 있는 것도 과거 중국의 모습과 닮아 있다. 베트남은 지금 한류 열풍과 박항서 매직 속에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박항서가 다녀간 분짜(베트남음식) 맛집' 이라는 홍보 문구가 그 어떤 호객 행위 보다 효과가 좋을 정도다. 한국인들을 향해 "한국은 왜 사드 배치를 하느냐"는 날 선 질문을 하는 현재의 중국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중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과정에서 높은 관세 부담을 안게된 중국은 현지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기업은 물론 자국 기업들까지 빠져나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계대상 1호는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베트남, 태국 등 인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중국이 새로운 패권을 꿈꾸며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자칫 기업들의 탈(脫)중국을 부추기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대일로가 인건비 등이 저렴한 동남아시아와 14억 인구의 중국간 연결성을 높여 기업들의 이동을 촉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중국 진출 외국계기업 관계자들을 한데 모아놓고 해외 기업들의 탈중국 움직임에 대해 "표준적인 다각화 차원을 넘어서는 어떠한 해외 이전 움직임도 처벌에 직면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실었다.
기업들이 중국 정부와 나눈 대화의 내용에 대해 입을 굳게 닫고 있어 실제로 현장에서 이정도 수준의 압박이 있었는지, 아니면 해외이전을 자제해 달라는 정중한 요청 정도였는지는 파악이 어렵다. 일각에서는 NYT가 중국과 갈등 관계에 놓인 미국의 시각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중국이 외국계 기업들을 압박하고 위협했다는 대화 내용이 다소 과장됐을 수 있다고도 지적한다.
문제는 NYT 보도의 진위여부를 떠나 중국 진출 외국계 기업 상당수가 중국 정부의 압박을 '충분히 있을수 있는 시나리오'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들이 사드 배치로 인해 경제적 보복을 당한 경험들을 떠올리며 미ㆍ중 갈등 관계에서 '줄세우기' 강요를 당할까봐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지금의 분위기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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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외교부는 NYT 보도와 관련해 "중국은 외국기업을 위해 투자와 경영 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쓰고 있다. 외국기업의 중국 투자를 환영한다"는 원론적인 발언과 해명을 내놓았지만 기업들의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왜 많은 외국계 기업들이 중국의 해명에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지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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