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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5000원의 행복' 누리려…아침부터 줄 서는 노인들

최종수정 2019.05.08 10:40 기사입력 2019.05.0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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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5000원의 행복' 누리려…아침부터 줄 서는 노인들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고객님, 죄송하지만 하루에 한 마리밖에 안 됩니다. 저기서 줄 서서 차례대로 이름 적으세요. 지금 적으시는 분들은 11시30분에 받아보실 수 있어요."


7일 오전 10시10분, 영업을 막 시작한 롯데마트 서울역점의 안쪽에 위치한 즉석조리식품 코너 앞에는 줄 잡아 30명 정도 되는 사람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매장 전체가 한산한 것과는 달리 이곳만 붐비고 혼잡했다. 5000원짜리 '통큰치킨'을 판매하는 부스에 고객들이 개장시간과 함께 몰려든 것이다. 이달 8일까지 이뤄지는 한정행사로 L포인트 회원에게만 5000원에 판매한다.

줄의 맨 앞에는 점원이 명부를 펴 놓고 숫자와 함께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있었다. 혼잡으로 인해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14명이나 이름을 올린 상태였다. 명부에 이름을 올리면 번호표를 받을 수 있다. 치킨이 나올 시간이 되면 번호표를 주고 치킨과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11시 이전에 치킨을 받아가려면 한 자릿수 번호를 받아야 하고, 10번대부터는 11시 이후, 30~40번대는 오후가 돼서야 치킨을 받을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줄을 선 대부분의 고객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라는 점이었다. 온라인상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통큰치킨이 화제가 되고 있지만 실제로 줄을 서서 사는 이들은 노인이었다. 5번 표를 받은 정동호(가명ㆍ65세)씨는 "얼마 전에 아내가 사 왔는데, 맛이 괜찮아서 이번엔 내가 사러 왔다"면서 "내 바로 앞(4번)에서 끊겨서 (치킨이 나올 때까지) 10분 정도 기다렸다"며 환하게 웃었다. 45번을 받은 김영옥(가명ㆍ62세)씨는 "치킨이 2시에나 나온다니 잠시 집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노인 중의 절반은 근처에 거주하는 이들이었지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멀리서 찾아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출근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마트를 찾지 않고, 주부들도 등원 등의 문제로 아침 일찍 마트를 찾는 일이 드물다"며 "어르신들이 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경로당에서 간식처럼 나눠 먹는 일이 많다"고 귀띔했다.

10시30분이 돼 50명의 명단이 꽉찬 뒤에야 소강상태가 됐다. 주부로 보이는 이들도 한둘씩 찾아와 치킨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달 통큰치킨 행사 때는 마트가 문을 열기 전인 9시30분부터 줄을 서 기다리는 손님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프랜차이즈 치킨이 2만원, 웬만한 시장 치킨도 1만원인 시대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대형마트 치킨이 노인층을 끌어들인 것이다.


통큰치킨은 대형마트가 만들어낸 히트상품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슈를 불러온 상품이다. 2010년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한동안 사라졌지만 9년만인 지난 달 롯데마트 21주년 행사에서 부활했다. 롯데는 이번 달 앵콜 행사를 계기로 매달 며칠씩 통큰치킨을 판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롯데가 정기 판매 의사를 밝히면서 논란은 재연되는 분위기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생존을 위협한다'며 통큰치킨 판매 자제를 요청했다. 협회 관계자는 "프랜차이즈인 우리뿐만 아니라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대기업이 미끼상품으로 이런 영역에 침범해서야 되겠나"고 항변했다.


롯데마트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통큰치킨은 한정된 수량 판매로 대부분 오전에 마감되는 반면, 프랜차이즈 치킨이 판매되는 시각은 대부분 저녁 시간이어서 골목상권과 겹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이 치킨을 사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아 부활시킨 것인데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휘말려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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