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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의 On Stage] '고와서 서러워라' 70세 발레리노의 꿈

최종수정 2019.05.08 13:30 기사입력 2019.05.0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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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나빌레라'…70세 제자ㆍ23세 스승의 발레와 삶

창작가무극 '나빌레라'의 한 장면  [사진= 서울예술단 제공]

창작가무극 '나빌레라'의 한 장면 [사진= 서울예술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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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일흔 살 노인 심덕출이 스물셋 발레 선생 이채록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심덕출을 연기하는 배우 진선규(42)가 진짜 70대 노인처럼 보여서다. 그의 목소리도 70대 노인의 소리처럼 들린다. "선생님, 잘 가르쳐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나빌레라'는 발레리노를 꿈꾸는 일흔 살 노인이 20대 청년을 스승으로 맞아 발레를 배우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채록은 심덕출에게 발레를 가르쳐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삶을 배운다. 발레를 주고 삶을 받는 관계에서 발레는 곧 삶이라는 등가 관계가 성립된다. 극 속에서 심덕출과 이채록에게 발레는 곧 삶이다. 둘은 발레라는 삶을 공통분모로 나이차를 극복하고 우정을 나눈다. 발레는 곧 예술로 승화된다. 나빌레라의 발레는 삶이자 곧 예술이다.

극은 심덕출이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심덕출은 어린 시절부터 고이 간직했던 발레리노의 꿈을 떠올린다. 그는 가족이 모두 모인 저녁 민망한 타이즈를 입고 나와 말한다. "나 이제 발레를 배워보려 해."


왜 하필 발레일까. 이채록은 "대체 발레가 뭐길래?"라고 묻는다. 심덕출은 답한다. "나도 모르겠어...근데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아..조금만 더 해보고 싶어. 할 수만 있다면 조금만 더, 그냥 살아있다고 느끼고 싶어."


극 속에서 발레의 동작은 삶의 태도와 동일시된다. 발레 동작 중 무릎을 구부리는 '쁠리에(Plie·구부리다 뜻)' 동작을 설명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채록은 더 높이 뛰기 위해서라며 쁠리에 동작을 취한다. 진선규도 극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로 '더 높이 날아 오르기 위해선 깊이 숨죽일 시간이 필요해 마치 그랑쁠리에처럼'을 꼽았다.

공연 내내 심덕출의 무릎은 굽어있다. 진선규는 구부정한 몸동작으로 70대 노인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그의 펴지지 않는 무릎에 익숙해질 때쯤 그의 얼굴 표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없이 해맑다. 심덕출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물론 꿈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표정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보다 훨씬 해맑다. 빌리는 발레를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좋아하는 발레를 하면서도 얼굴 표정은 심각하다. 심덕출은 발레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좋다. 그래서 표정은 빌리보다 더 해맑다. 그는 "매일이 새롭다"고 노래한다.

창작가무극 '나빌레라'의 한 장면   [사진= 서울예술단 제공]

창작가무극 '나빌레라'의 한 장면 [사진= 서울예술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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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덕출의 펴지지 않는 무릎과 활짝 핀 얼굴. 나빌레라는 심덕출을 통해 70대 노인의 무릎과 10대 소년의 해맑음 사이에 어떤 간극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 간극 어딘가에 삶이 존재함을 보여주는듯 하다.


진선규는 "심덕출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 첫 장면을 제외하면 공연 내내 꿈을 쫓아가는 인물이다. 표정이 좋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그 좋아하는 마음이 공연의 마지막까지 확장된다. 표정이 안 좋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덕출의 마음이 되고자 노력했다"고 했다.


극은 지극히 착한 드라마의 전형을 따라간다. 주변 인물들은 하나 같이 착한 인물들이다. 원작 만화와 비교하면 갈등도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나빌레라는 같은 제목으로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2016년 7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연재된 웹툰 '나빌레라(작가 HUN·지민(본명 최종훈·김지민)'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 웹툰에서는 심덕출의 손녀가 등장해 심덕출과 대화가 없는 가족의 문제를 지적하는 장면도 있다.


창작가무극 나빌레라에서는 심덕출의 가족은 원작 만화에서보다 단촐할 뿐 아니라 따뜻하다. 원작 만화에서처럼 장남 심성산이 아버지와 대립하지만 격렬하지 않다. 단조로울 수 있는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소재의 참신성과 심덕출을 연기한 배우의 표현력에 있을 것이다.


나빌레라라는 단어는 조지훈 시인이 스무 살 때 쓴 '승무'라는 시에 등장해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다. 승무에 '고와서 서러워라'라는 표현이 나온다. 나빌레라도 심덕출의 삶의 태도가 고와서 울림이 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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