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이나 말 바꾼 정부" 물건너간 주세개편…속터지는 국산맥주(종합)

2018년 7월 백지화 및 재검토→2018년 11월 “3월 개편안 제출” 약속
→2019년 상반기 “5월 초 발표”→ 잠정 연기 통보·일부 주종 단계적 추진
업계 “이번엔 진짜 바뀔 줄 알고 투자했는데” 공회전 비판 피할 수 없어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50년 묵은 주세법 개정이 또 다시 미뤄지면서 맥주업계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세법 개정과 관련한 정부의 지속적인 약속 파기에 결국 공회전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비난과 함께 경제활력 제고와 일자리 창출 의지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8일 기획재정부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재부는 이달 초 계획했던 종가세 방식에서 종량세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세 개편안' 발표를 연기했다. 업계 간 입장차가 복잡해 모든 주종에 동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주세법 개편 논의는 지난해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종량세 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같은 해 7월 말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전 주종의 조세 형평성 등을 고려해 내년으로 연기하겠다며 전면 백지화했다.

기재부는 이후 세 차례 태도를 바꿨다. 지난해 11월 기재부는 "내년 3월 개편안을 제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다시 연구 용역 의뢰 중이며 4월 말에서 5월 초 발표를 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예고했던 발표 시점이 임박하자 이번엔 기한을 두지 않고 연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 개편을 보류한 것이 아니라는 게 정부의 공식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주세법 개편 자체가 전면 무효화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주세법 개편에 맞춰 투자를 진행하거나 가격 경쟁력을 기대했던 국산맥주와 수제맥주 업계는 강한 유감을 표시하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주세법 개편을 가장 강하게 요구했던 수제맥주협회는 "주세법 개정안 발표가 6개월 새 세 번이나 지연돼 정부의 경제 활성화 의지가 의심된다"며 "맥주산업의 존폐가 달린 주세법 개정이 무산된다면 상당수 업체가 내년까지 버티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성토했다. 임성빈 한국수제맥주협회 회장은 "4조원이 넘는 맥주 시장의 존폐가 달린 사안이 계속 표류 중인 것을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다"며 "이번 주세 개편에 맞춰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많은 업체들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어 개편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입맥주 4캔=1만원 행사.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는 "종량세로 전환되면 고품질의 다양한 맥주를 합리적으로 마실 수 있어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혜택이 크다"며 "특히 고용창출과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등 경제 기여도도 대폭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4년 홍종학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중ㆍ소규모 맥주업체의 세율 인하와 음식점 납품 허용 등을 골자로 한 '주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후 새로 생긴 수제맥주 전문점은 약 600여개에 이른다. 이 중 전국 200여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수제맥주 프랜차이즈 생활맥주의 경우 본사 근무 인원과 가맹점 운영 인원을 합쳐 약 1000여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됐다.

시장의 현실에 뒤떨어진 제도 탓에 수입맥주에 안방을 내준 맥주업체들은 비상이다. 현재 하이트진로, 롯데주류의 공장 가동률은 2017년 기준 30%대까지 추락했다. 수제맥주 업체 더부스는 주세 체계로 인한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 최근 한국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반면 수입맥주의 시장점유율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4%대에서 17.9%까지 약 4배나 급증, 안방 시장을 공략 중이다. 맥주 수입액은 매년 사상 최대 기록을 갱신 중이며, 주세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향후 5년 내 40%까지 자리를 내어줄 수 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맥주업계 관계자는 "주세법 개정만이 국산맥주를 부활시킬 수 있다"며 "맥주에 대해서만 세율을 변동하는 '핀 포인트 개정안'이라도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기재부 관계자는 "기존의 종가세를 종량세로 전환하는 데 대해 주류업계 내 이견이 일부 있어 조율에 추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주류 가격 인상이 없도록 하는 게 기본 방향이지만, 세율 전환으로 시장점유율이 낮은 제품 인상까지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