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로 105번길

가파른 언덕 위

자그마하고 깔끔한 집


담장도 낮고

꽃밭도 작고

낮고 작아서 다 보인다

핀 꽃 안 핀 꽃

해당화 능소화 블루베리 제비붓꽃

창문 아래 약간 구부러진 화살나무,


어느 날 마주친 집주인에게

식구가 어찌 이리 단출하고 깨끔하냐 물었더니

꽃밭이 작아서

다 솎아 버린다고 했다

번지고

번져야 사는 아이들

있을 만큼만 두고 버리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더군다나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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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이야기/김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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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로 105번길"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를 읽어 보면 "가파른 언덕 위"에 "담장도 낮고" "꽃밭도 작"은 고만고만한 살림들이 모여 사는 산동네인 듯하다. 그리고 시인은 그곳을 오가다 "핀 꽃 안 핀 꽃"이 한데 어울려 "단출하고 깨끔"한 어느 집 화단에 마음을 뺏겼던 듯하고. 그러다 문득 "마주친 집주인에게" 꽃밭이 "어찌 이리" 깨끗하고 아담하냐고 묻자 좀 생뚱맞게도 "꽃밭이 작아서 다 솎아 버린다"라고 답하더라는 게 4연까지의 내용이다. 그리고 마지막 연이 잠시 뒤에 이어진다. 그런데 마지막 연은 읽기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갈라질 수 있어 보인다. 하나는 매정한 꽃밭 주인을 타박하거나 타이르는 문맥으로, 다른 하나는 꽃밭이 작아 차마 꽃을 솎을 수밖에 없는 주인의 심정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맥락으로 말이다. 어느 쪽인지는 시인만이 알 것이다. 그렇지만 뒤엣것으로 짐작해 보는 게 더 애틋하지 않을까.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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