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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성의 게으름

최종수정 2019.03.21 11:20 기사입력 2019.03.2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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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성의 게으름

지난해 사찰 운영에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원인을 찾아서 궁리도 해보고 신도들과 주변의 스님들에게 묻기도 했지만 그 어떤 대답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중 어떤 답은 상황과 맞지 않았고 어떤 답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았다.


납득할 만한 대답을 찾아 묻고 다니기를 서너 달, 마침내 진짜 원인을 찾아냈다. 찾고 보니 그렇게 시간이 걸린 이유가 있었다. 바로 측근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다행히 문제는 잘 해결됐는데, 그럴 경우 해결이 쉬울 수도 있지만 오히려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 그때 얻은 경험이다.


만약 적당한 데서 만족하거나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짚었다면 어땠을까?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실천적 지식인조차 현장에서 실패하는 일이 많으므로 이런 세간의 인식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나 역시 원칙만 따지고 고지식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므로 그런 평가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 나는 조금 다른 견해가 있다. 융통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게으름 탓이라고 말이다.


인간의 감각 중 후각은 쉽게 피로를 느끼는 능력으로 알려져 있다. 화장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코를 막게 하던 악취를 화장실을 나갈 때쯤에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내 경험으로 보아 지성도 후각 못지않게 쉽게 피로해지는 능력이다. 자신에게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를 파악할 때 지성은 기민하게 움직이며 전력투구하지만, 일단 파악되고 나면 게을러져서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게 된다.


더구나 지성만큼 자기도취에 빠지기 쉬운 것도 없다. 안다는 환상, 잘났다는 우월감은 자기도취와 게으름을 조장한다. 불교에서는 지성이 '나'라는 환상을 만들어내어 무지의 원인이 된다고 경고하기까지 한다. 그것은 지성 자체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지성의 게을러지기 쉬운 속성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식인의 실패가 지성 자체가 아니라 지성의 게으름 탓이라는 나의 생각은 젊은 시절 겪었던 수많은 실패로부터 얻은 결론으로, 나는 내가 옳다고 믿은 신념 때문에 수많은 일에서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나 그 실패는 정확히 말해 신념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접근 탓이었다.


'백유경'에 목수에게 일 층, 이 층은 관두고 삼 층만 지어달라고 했다는 어느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은 인권과 소수자 차별, 자살률 등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화려한 삼 층을 가졌지만 일 층, 이 층은 물론이고 기초도 허술한 집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인데 더 화려한 삼 층을 만들어달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수록 지성이 필요하다. 게으른 지성이 아니라 부지런한 지성이. 불교는 지성에 자신이 파악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관찰하기를 요구한다. 작은 사찰에서 일어난 가벼운 문제조차 원인을 찾는 데 서너 달이 필요했다. 여론과 지지율 때문에 마음이 바쁘겠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삼 층을 만들겠다는 신념보다 기초를 바로잡을 원인 분석이다. 문제의 정확한 원인을 찾을 때까지 끈기 있게 지성을 발휘하자. 현실에서 눈을 떼지 않고 끝까지 관찰하는 부지런한 지성을.


명법스님 구미 화엄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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