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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포퓰리즘이 낳은 인종차별과 이슬람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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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뉴질랜드에서 벌어진 총격사건으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해 50명의 무슬림 이주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들 가운데는 중동이나 아시아 지역에서 난민으로 뉴질랜드에 들어와 새 삶을 꾸려나가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산탄총과 자동소총, 방탄조끼로 무장한 범인은 금요일 예배에 나온 무슬림들을 마치 컴퓨터 게임을 즐기듯 두어 시간에 걸쳐 살해했는데 범행 직전 소셜미디어를 통해 반이민, 인종차별과 무슬림에 대한 증오를 표출했고 범행 도중엔 페이스북을 통해 총격 과정을 생중계해 영상이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그동안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수많은 총격사건들을 외신으로 접해온 우리로서는 어느 또 다른 미치광이의 총기난동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범인이 남긴 증오가 가득한 메시지를 살펴보면 그가 백인 우월주의 집단의 일원으로 뉴질랜드뿐 아니라 유럽과 전 세계에서 이슬람의 침략을 막아야 한다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민과 무슬림으로부터 조국과 순혈주의를 지키자는 이 같은 구호는 총기난동을 벌이는 극소수 백인들의 전유물일까.

2015년 내전에 휩싸인 시리아 등 여러 중동국가들로부터 무려 100만명의 난민들이 유럽에 몰려들었다. 독일과 스웨덴,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들이 앞장서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였는데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유럽 몇몇 나라에서 무슬림들을 배척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극우주의 정치인들이 등장해 무슬림과 이민자들을 쫓아내고 기독교와 백인사회, 조국을 지키자며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인종차별주의, 국수주의와 결합한 반무슬림 정서는 유럽을 휩쓴 뒤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포퓰리즘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잘 알다시피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중동지역 5개국 출신 무슬림의 미국 내 입국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얼마 전에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국경장벽을 세우려고 한다.


흔히 말하는 포퓰리즘은 선심성 공약을 늘어놓는 정치인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포퓰리즘은 19세기 말 미국의 '국민당(People's Party)'이 원조인데 유권자들을 상대로 '소수의 부패한 엘리트 계층이 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을 착취한다'는 피해 망상을 부추겨 지지를 이끌어낸다. 더 나아가 엘리트 계층이 이민자나 무슬림 등을 불러들여 국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국가와 문화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순수한 백인 혈통을 더럽힌다는 인종차별주의와 결합하기도 한다. 기존 언론으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하기 일쑤인 포퓰리스트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종차별과 극단주의를 전파하며 세력을 늘린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 벌어진 인종차별주의자의 끔찍한 대량살상극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제주도에 수백 명의 예멘 난민들이 무비자 입국해 망명 신청을 했을 때 인터넷을 중심으로 일부 국민들이 청와대 청원 등을 통해 반난민 정서를 표출하는가 하면 서울과 제주 일대에서 벌어진 반난민 시위에는 수백 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예멘 난민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자고 외친 유엔 난민기구 홍보대사를 맡은 연예인은 아직까지도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 피부색이 다르고 이슬람교도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지켜보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 뉴질랜드에서 벌어진 끔찍한 총기 대량살상극과 증오범죄를 접하면서 그나마 총기에 대한 규제가 엄격한 대한민국이 다행스럽다.


김헌식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언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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