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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지막 공부' 마음 다스리고 일상에 몰두하는 지혜 담아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일상을 소재로 철학 쉽게 풀어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서지현 검사는 지난해 1월28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검찰 내 성추행을 폭로했다. 서 검사의 폭로로 미투(Me Too·나도 성폭력 피해자다) 운동이 지난 1년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출판업계도 미투 열풍의 영향을 받았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해 페미니즘 서적이 주목받았다. 위로와 격려의 말을 담은 에세이가 강세를 보인 점도 미투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51)는 "미투와 갑질 논란으로 청년들의 윗세대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끌어안아 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고 지쳐있는 삶에서 위로와 격려 받기를 원하다 보니 혜민 스님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과 같은 에세이의 인기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요즘 청년들이 많이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최적화된 짤막한 내용의 글이라는 점도 인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경제는 지난 23일부터 29일까지 팔린 책을 대상으로 베스트셀러 순위를 매겼다. 예스24ㆍ교보문고ㆍ인터파크 등 주요 온오프 서점의 판매량 순위를 참고하되 본지 문화 팀 기자들의 평점을 더해 종합점수를 집계했다. 이번 주에도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이 예스24, 교보문고, 인터파크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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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계에서는 혜민 스님의 독주가 좀 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작들도 3~4개월씩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유지할 정도로 혜민 스님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 서적이 장기간 독주를 지속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고찰이 필요하다. 위로와 격려를 얻으려는 심리는 힘든 현실로부터 달아나 내면으로 침잠하려는 심리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에세이의 강세는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길을 잃어버린 이 시대 청춘들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장 대표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면 공감, 위로, 격려가 젊은 층의 고통을 마취시켜주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위로와 격려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말 현실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주 순위권에 진입한 '다산의 마지막 공부: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과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가 눈길을 끈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는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일상에 몰두할 것을 주문하는 내용을 담았다. 송나라 학자 진덕수(眞德秀)가 쓴 '심경'을 쉽게 풀어썼다. 심경은 다산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읽은 책이다. 진덕수는 사서삼경을 비롯한 동양 고전들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내용만 선별해 심경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퇴계 이황은 새벽마다 심경을 읽었고 효종은 심경을 관에 넣어달라고 했다. 정조도 경연에서 심경의 내용을 자주 다뤘다고 한다. 천주교부터 수학까지 당대 모든 학문을 섭렵한 조선 최고의 철학자 다산이 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읽은 책이 심경이었으니 그 가치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심경과 관련한 국내 서적은 심경의 원전을 해석하거나 해석 후 주석을 다는 정도에 그쳐 내용이 어려웠다. 고전연구가 조윤제씨가 대중들도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냈다.


장 대표는 "요즘에는 정보가 그 자체만으로는 가치가 없다. 정보가 넘쳐나고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예로 들면 책이 어떤 내용을 담았다는 정보는 중요하지 않다. 대중들은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책을 읽은 후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깊이 있게 분석해주는 것을 선호한다. 정보가 아니라 의견을 갈망한다"고 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도 어려운 철학 이론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일상에서 철학에 어떻게 쉽게 접근하느냐를 탐구한 책이다. 예를 들어 6·25전쟁 당시 중국군에 잡힌 미군 병사들이 단기간에 공산주의에 세뇌당한 이유를 리언 페스팅어의 인지 부조화로 설명하고 장 자크 루소의 일반의지를 구글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를 통해 살펴본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 야마구치 슈는 일본 게이오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에서 미학미술사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보스턴컨설팅그룹, AT커니 등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에서 전문 컨설턴트로 일했다.


한국사 강사 설민석씨가 어린이 학습 만화 콘텐츠 개발 전문 작가 팀 '스토리박스'와 함께 만드는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9'도 순위권에 새롭게 진입했다. 이 책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약판매만으로 순위권에 진입해 설민석에 대한 대중의 선호를 확인시켜줬다. 3ㆍ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발간될 9권에서는 독립운동을 다룬다.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조던 B. 피터슨 교수의 '12가지 인생의 법칙', 기욤 뮈소의 '아가씨와 밤', 앤디 그리피스의 '104층 나무 집', 김난도 교수를 비롯해 여덟 명이 쓴 '트렌드 코리아 2019' 등 상위권 순위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설 연휴가 지나면서부터 소설가들의 신작들이 나올 예정이어서 에세이가 주류인 출판계 흐름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문학동네와 민음사가 한강, 조남주 작가의 신작을 2, 3월에 잇따라 발간할 계획이며 김훈, 조정래 작가의 신작도 상반기 중 나올 예정이다. 또 유시민 작가의 신작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도 상반기에 출간될 예정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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