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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형의 오독오독] 서울은 어떻게 '욕망의 땅'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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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영 교수 신작 '서울 탄생기'

김승옥 등 작가 16인의 작품 110여편 활용 … 현대 서울의 탄생을 세 시기로 나누어 분석
부동산투기의 기원과 그로인한 계층분화 등 당시 도시공간 변화와 서민들의 삶을 재현

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사진출처: 사진작가 전민조)

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사진출처: 사진작가 전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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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최대 이슈는 남북정상회담이었지만 국내 뉴스로 한정하면 1위를 다투는 것이 부동산이다. 연초부터 꿈틀대기 시작한 집값, 특히 아파트 값은 봄이 지나 가파르게 상승했고 정부의 대책이 나올 때마다 이를 비웃듯 신고점을 경신했다. 서울 기준으로 말이다. 일각에서는 부녀회 담합 등을 통한 거품형성이 집값 상승 원인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재산을 불리려는 욕망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원인 중 하나로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만 중요 원인으로 꼽는 것은 비약이다. 거래는 파는 사람이 있으면 사는 사람도 있어야 성립한다. 재산을 불리려는 원초적 욕망을 실현시켜준 것은 평소보다 더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서울에 집을 가져야만 하겠다는 욕망인 것이다.

송은영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쓴 '서울 탄생기'는 부동산 신화를 비롯한 서울의 갖가지 문제의 시작이 1960년대라고 주장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한 연구 자료로 문학을 활용했다. 저자는 이호철, 김승옥, 최인훈, 이청준 등 작가 16인의 작품 110여 편에 비추어 1960∼1970년대 서울을 분석한다. 문학을 택한 이유는 "당시의 도시계획이나 정책 등까지 알기에는 부족하지만 도시 공간이 어떻게 체험되고 의식 속에서 각인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문학의 언어를 통해 재현된 공간들은 상징적 차원에서 도시공간을 새롭게 생산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울 탄생기'는 서울의 1960∼1970년대를 각각 1961∼1966년, 1966∼1972년, 1972∼1978년 세 시기로 나누어 분석한다. 1부는 행정구역상 서울이 탄생하는 도시개발의 전사를, 2부는 김현욱 서울시장 취임과 함께 시작된 불도저식 도시개발을 다룬다. 3부는 강남개발로 인해 강남과 강북, 도시 중산층과 서민, 서울과 위성도시들 사이의 위계질서가 탄생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책 초반부에서 자주 언급되는 작품인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는 1960년대 중반 서울의 풍속도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작품 속 서울의 모습은 인구 과잉에 시달리고 있고 약삭빠른 사람들이 모이며, 일자리와 주택은 부족하고 교통난은 심화되고 있으며, 영세 자영업자는 늘어나는 형국으로 그려지고 있다. 연도를 지우고 보면 영락없는 지금의 서울이다. 그럼에도 이 무렵 작품들에서는 무작정 서울에 살고 싶다는 젊은이들의 욕구가 자주 표현된다. 작가가 대표적으로 꼽는 것이 김승옥의 '무진기행' 속 대사다. 주인공이 무진에서 만나는 하인숙은 "서울에 가고 싶어요, 단지 그거뿐이에요"라고 말한다. 무작정 서울에 올라오는 주인공들은 변변치 못한 돈벌이와 좁디좁은 방, 잦은 이사를 경험하면서 '내방 한 칸'을 향한 욕망을 키운다.

1966년에는 김현욱 시장이 부임하면서 서울의 폭발적 확장이 시작됐다. '불도저' 김현욱은 '돌격'이라고 헬멧에 써 붙이고 서울 곳곳을 파헤쳤다. 남산 1호 터널을 기공했고 시내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주요 간선도로를 넓혔다. 도로 확장으로 서울 사람들의 주거지가 도심 바깥으로 확대됐다. 서울의 실생활권역이 사대문을 넘어 현재의 서울권과 비슷해졌다. 근래에도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통해 경기도 신도시를 서울과 엮는 식으로 서울권의 확장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한편 한강변에 살던 주민들은 김현욱의 도로 확장 사업으로 쫓겨나게 됐다. 현재 수억 원의 프리미엄이 붙는 '한강뷰'는 값비싼 고층 아파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의 특권이 됐다.

엄청난 속도로 서울이 개발될 수 있던 이유는 권위주의 정권 아래 토지와 집에 대한 보상 개념이 희박해서였다. 이 무렵 자본주의의 발달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 돈도 돌기 시작했다. 빨라진 서울 시내에는 전차가 없어지고 버스가 주 교통수단이 됐다. 박태원의 동명 소설을 최인훈이 이어 연재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사람들에게 밀려서 버스를 타지 못하는 구보씨의 모습 등을 통해 여유가 없어진 서울을 그리기도 했다. 도심이 고층화되고 중심가가 발달하면서 서울의 중심가와 주변부 사이에 위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개발의 역사 속에서 가난한 이들은 끊임없이 밀려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서울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 잠실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출처: 서울역사박물관)

1970년대 후반 잠실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출처: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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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의 시작점인 1972년부터 시작된 강남의 개발은 현재의 욕망의 도시 서울을 완성시킨 사건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는 강북인구의 분산이었지만 부동산 투기를 통해 정치자금을 마련하려고 한 정권의 의도도 있었다. 이는 유하 감독의 영화 '강남 1970'에도 잘 나와 있다. 정권 차원의 투기로 인해 압구정을 비롯한 강남 땅은 10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많게는 1000배 가까이 올랐다. 여기에 경기고, 휘문고 이른바 명문고 들이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이른바 '8학군' 신화의 기틀이 잡혔다. 1970년대에는 '복부인'으로 상징되는 부동산 투기의 대중화가 이뤄진 시기다. 땅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에 너도나도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었다. 이때 만들어진 부동산 신화가 여전히 서울을 지배하고 있다. 지난해 중반까지도 유효했던 '갭투기' 열풍이 그러하다.

'서편제'로 잘 알려진 이청준은 1970년대 후반 스스로 작성한 연보에서 1960년대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한다. "서울을 사수하자. 서울을 다시 쫓겨나지 않도록 하자. 어떻게 올라온 서울길이었던가. 어떻게 버티어 온 서울의 6년이었던가. 그리고 어떻게 얻게 된 이 자랑스러운 도시의 시민이 된 영광이던가." 현대 서울의 탄생기부터 시작된 어떤 고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서울에 살고자 하는 욕망, 서울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는 안간힘, 이 감정이 위협받을 때마다 서울의 집값은 요동쳤다. 지난해 집값 폭등의 이면에는 서울에서 앞으로 내 집을 살 수 없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가 있었다고 본다. 9ㆍ13 부동산 대책으로 냉각기를 맞이했다지만 얼마나 갈까. 서울의 신화가 무너지고 이 욕망의 불이 꺼지지 않는 한 서울 땅은 언제든 다시 타오를 것이다. 서울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이근형 기자 ghlee@


서울 탄생기 / 송은영 지음 / 푸른역사 / 2만9000원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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