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AD
원본보기 아이콘
와인을 비롯한 음료의 색깔과 투명도가 좋아진 것은 아름다운 유리잔(글라스)이 나온 다음부터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좋은 예가 샴페인으로, 샴페인은 1600년대 말부터 나오기 시작했는데, 당시 샴페인은 찌꺼기가 많았고 점도가 있었으며 단것이었다. 이를 당시 새로 유행하기 시작한 글라스에 따라 놓으면 부유물질 때문에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래서 샴페인의 제조 방법을 개선한 결과 찌꺼기를 제거해 훨씬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됐고, 샴페인이 맑아지니 글라스도 더 아름답게 만들게 돼 샴페인의 멋을 자랑할 수 있었다.


테이블에서 지금같이 와인 잔을 하나의 모양으로 갖추는 풍습은 1700년대 들어와서 영국 상류층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전에는 한 자리에서도 여러 가지 모양의 잔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유리잔 즉 글라스는 귀했고, 대개는 불투명한 금속이나 투박한 토기, 동물의 뿔로 만든 잔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 때 석탄을 연료로 사용해 높은 온도로 유리를 가공하면서 단단한 유리가 나와 실용화 단계로 접어들었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투명하고 아름다운 글라스를 얻을 수 있어서 대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1800년대 초까지 글라스는 주로 궁중에서만 사용됐으며 특별한 행사에만 쓰였다. 글라스를 구입한다는 것은 대단한 투자였으며 아주 이름난 연회에서도 글라스 하나로 여러 명의 손님이 사용했다. 이윽고 유리로 아름답게 만든 글라스는 신분의 상징이 됐고, 모든 고급 파티에서는 각 손님에게 여러 형태의 글라스가 제공돼 샴페인, 레드, 화이트, 셰리 등 와인의 종류에 따라서 다양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샴페인 글라스의 이야기는 멀리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최초의 와인글라스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트로이의 헬레네(Helene)가 자신의 유방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와인 마시는 것을 관능적인 경험으로 생각했고, 글라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그 모형을 만드는 데 관여해 꼭 맞는 것이라야 했다. 그후 근세에 이르러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의 생일을 맞아 자신의 왼쪽 유방을 본떠서 만든 글라스를 왕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앙투아네트의 글라스는 헬레네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유방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입구가 넓은 형태의 글라스 즉 '쿠프(Coupe)'는 1663년 영국에서 스파클링와인과 샴페인에 사용한 기록이 나오니, 마리 앙투아네트가 태어나기 100년 전에 이미 영국에서 나온 것이다. 이 쿠프가 프랑스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700년대부터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될 텐데…"라고 말해 대중을 격분시킨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 말은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설이 유력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공주로 태어나서 14살 때 루이 15세의 손자인 루이 오귀스트(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한다. 왕비의 사치와 향락이 프랑스대혁명의 도화선이 됐다고 이야기하지만 프랑스의 다른 왕비들과 비교하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소박한 편이었다. 이미 루이 15세 때부터 사치와 향락에 돈을 많이 썼고, 또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원하느라 국고가 바닥이 나 있었던 것이다.

AD

프랑스대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에 생필품 가격 폭등, 자연 재해, 국가 재정 파탄으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됐고, 이에 따라 고의로 왕비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왕비가 프랑스와 사이가 좋지 않은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해 왕비에 대한 적개심이 날로 증폭되기도 했다. 그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고 유배돼 있다가 1791년 모국인 오스트리아로 도주를 시도하지만 곧 발각돼 단두대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니까 유방을 본떠서 글라스를 만들었다는 소문도 왕비를 저주하는 분위기에서 나온 신빙성 없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