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경제성만 치중 국가 R&D 예타, 폐지해야”
임대식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인터뷰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국가 연구개발(R&D)에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과학기술은 경제성에만 주목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R&D 예타를 폐지하는 게 맞다."
임대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혁신본부)장을 지난 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만났다. 혁신본부는 문재인정부에서 신설된 조직이다. 본부장은 차관급이다.
임 본부장은 "앞으로 다가오는 사회는 과학기술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제성에만 주목한 나머지 R&D 예타처럼 추격형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R&D에 '경제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예타'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후진적이란 말이다. 예타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인 사업에 대해 취지와 경제성 등을 판단하는 제도다. 예산권을 쥔 기획재정부가 실시한다.
임 본부장은 "경제성에만 주목한 예타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R&D 예타의 경우 과기정통부에서 진행하면 보다 전문적이고 융통성 있는 과학기술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R&D 예타를 과기정통부로 이관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기재부와 합의는 마쳤다. 그러나 국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기재부 출신 국회의원 등 일부가 과기정통부 이관을 반대하고 있어서다. 장기적으로는 국가 R&D 분야에 대한 예타를 폐지하자는 게 임 본부장의 뜻이지만, 과기정통부 이관이라는 첫 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9월 초에 임명돼 세 달이 지났는데 소감은.
▲4차 산업혁명 도래 등으로 과학기술혁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이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과학기술혁신이 활발히 일어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게 본부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차관급 조직임에도 혁신본부에 실장급이 없다는 건 문제가 아닌가.
▲현재 본부에는 과학기술정책국ㆍ연구개발투자심의국ㆍ성과평가정책국 등 3개국이 있다. 정책국은 중장기 목표 등을 수립하고 투자심의국은 정부 R&D 정책에 부합하는 투자 방향ㆍ기준을 설정한다. 예산 배분과 조정 역할도 한다. 평가국은 사업ㆍ과제ㆍ기관 평가 등을 실시한다. 이 같은 혁신본부의 3대 기능을 총괄ㆍ연계ㆍ조정할 컨트롤타워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실장급 직제 신설을 위해 행정안전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
-그동안 과학기술 혁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창의적 R&D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R&D가 부족했다. 융합과 협력 문화도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냈다. 그동안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로서 단기 성과에 치우쳐 진행돼 왔다. 창의적 연구가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거의 추격형 R&D 전략은 이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연구 주제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실제 사회문제 해결, 국민편익증진 등과 관련된 R&D는 20% 정도에 불과하다.
융합과 협력 문화가 미흡한 것은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른바 우리나라에는 NIH(Not Invented Here) 증후군이 심각하다. NIH 증후군은 제3자가 개발한 기술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조직 문화 또는 태도를 말한다. 이 모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
-과학기술 혁신 방향으로 '연구자 중심' '시스템 혁신' '국민 체감'을 꼽았다. 어떤 취지인가.
▲과학기술 혁신은 긴 호흡을 갖고 '사람'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 연구자 중심의 창의ㆍ도전적 R&D 지원 강화를 위해 자유 공모형 기초연구 지원 규모를 2022년까지 현재의 2배로 확대할 것이다.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행정 부담도 줄일 것이다. 기초ㆍ원천 연구는 과기정통부, 특정 산업 수요 연구는 개별 부처 중심으로 운영하는 등 구조를 정착시키겠다. 마지막으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미세먼지ㆍ감염병 등 사회문제 해결 R&D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10월 발족한 '연구제도혁신기획단'은 어떤 일을 하는가.
▲관료가 해법을 만들어 연구자에게 내려보내는 '하향식(Top Down)'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방식으로는 현장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 관료가 아닌 연구자들이 문제를 파악하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즉 상향식(Bottom up) 혁신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기획단을 출범시켰다. 혁신기획단의 산ㆍ학ㆍ연ㆍ전문기관 연구자들은 현장과 토론ㆍ면담 등 소통을 기반으로 실질적 문제, 공감할 수 있는 개선사항과 혁신적 R&D 정책을 발굴할 것으로 기대한다.
-R&D 예타를 과기정통부로 이관하는 데 국회 반대가 만만치 않다.
▲R&D 예타를 과기정통부로 위탁하고 기재부와 과기정통부가 R&D 지출 한도를 공동으로 설정하는 방안에 두 부처가 합의했다. 혁신본부의 예산권 강화를 위해서는 국가재정법과 과학기술기본법 등 관련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국회가 반대하고 있는데 연구현장의 진솔한 목소리를 의원실에 직접 전달하고 있다. 특정 국회의원의 경우 수차례 만나 설득 작업도 벌이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R&D 예타를 수행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기술성 평가와 예타 통합을 통해 예타 기간을 단축하고 운영의 전문성, R&D 투자 효율성 등을 높이자는 것이다.
-범부처 R&D 예산을 조정하고 배분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처 칸막이'가 문제가 되지 않나.
▲부처 칸막이를 해소하고 협업을 강화하기 위해 '부처 매칭형 R&D' 등 다부처 협업시스템을 강화할 것이다. 지금의 국가 R&D 사업은 편성ㆍ집행ㆍ결산 전 과정이 개별 부처의 권한과 책임에 기반을 두고 있다. 협업의 장점을 이끌어내기 부족한 시스템이다. 올해부터는 부처별 업무 영역 구분 없이 하나의 사업을 공동 추진하는 부처 매칭형 사업 방식을 도입했다. 부처 매칭형 사업은 여러 부처가 매칭펀드 형식으로 예산을 분담하는 새로운 협업 모델이다. 다부처 R&D 사업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계속 모니터링할 것이다.
◆임대신 본부장은?
임대식 본부장은 카이스트(KAIST)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혁신본부장에 임명됐다. 연구자에서 관료로 변신한 지 3개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정부 부처의 본부장이 돼 보니 넥타이를 매야 하는 등 옷차림부터 바뀌었다. 무엇보다 '아침형 인간'으로 전환된 게 가장 큰 변화다."
임 본부장은 '청심사달(淸心事達)'이란 문구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마음이 맑으면 세상의 이치가 보인다'는 뜻이다. 연구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미국 유학 시절 3000개의 다른 세포에서 각각 DNA를 뽑는 연구가 1년 만에 수포로 돌아간 경험을 꼽았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상장 첫날 70% 폭등 "엔비디아 독주 끝나나"…AI ...
"1년 노력이 물거품이 됐는데 그 경험이 줄기세포 배양부터 유전자 조작까지 모든 기술을 습득하고 이후 연구에 큰 기반이 됐었다."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난 임 본부장은 영일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미생물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생화학 및 분자유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존스 홉킨스 의대 박사 후 연구원, 2000년 고려대 생명과학부 조교수를 거쳐 2002년 카이스트 생명과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2010년에는 카이스트 Hippo 세포분열ㆍ분화창의연구 단장을 맡았다. 2014년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석좌 교수에 올랐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