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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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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블랙리스트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660년 영국의 왕 찰스 2세가 즉위한 직후다. 청교도 혁명으로 인해 아버지인 찰스 1세는 올리버 크롬웰을 중심으로 한 의회파에 의해 사형 당한 뒤 왕정마저 넘겨준다.

올리버 크롬웰 사후 다시 왕에 즉위한 찰스 2세는 과거사 청산을 위해 과거 찰스 1세의 사형과 관계된 정적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블랙리스트'라고 명한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정적들을 벌하기 위해 사용하던 용어인 블랙리스트는 1774년 노동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다. 미국 기업가들이 파업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취업을 금지시키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는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사건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례다. 할리우드 블랙리스트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1947년 11월 25일이다. 영화계 종사자 중 고산당원을 색출하기 위한 위원회에서 끝까지 증언을 거부한 10인의 각본가, 감독에게 의회모독죄가 적용됐다. 이른바 '할리우드 텐'이다.

배우조합 회장을 맡았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월트 디즈니 등은 위원회에 출석해 "미국 영화산업에서 공산주의의 위협이 심각한 수준이다"라고 증언했다. 영화사 사장들은 이들을 즉각 해고하고 고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미국은 트루먼 대통령의 보좌관 버나드 바루크가 '냉전(Cold War)'이라고 미ㆍ소 냉전 시대를 지칭할 정도로 공산주의자들을 색출, 몰아내야 한다는 매카시즘이 본격화 되고 있었다.

1950년 6월 22일 151명에 달하는 할리우드 종사자들의 블랙리스트가 '붉은 파시스트와 노동자들'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며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는 악명을 떨쳤다.

할리우드 텐 중 한사람인 돌턴 트럼보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후 동료의 이름을 빌려 일을 해야 했다. 그가 쓴 '로마의 휴일'과 '브레이브 원'은 아카데미 각본상까지 받았지만 트럼보는 얼굴 조차 내밀 수 없었다. 1993년 아카데미 위원회는 트럼보에게 잃어버린 트로피를 돌려줬지만 이미 그는 17년전 사망한 뒤였다.

우리나라 역시 정권이 바뀔때 마다 블랙리스트로 한바탕 홍역을 앓는다. 최근 화제가 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권이 바뀌고 한동안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문화계 인사들이 지난 2년간의 억울함을 쏟아내는 모습은 70년전 할리우드의 데쟈뷰다. 정치권에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선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다른 한편에선 재계 총수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들어찬 새로운 국감 증인 출석 명단이라는 따끈한 신상 블랙리스트가 돌아다닌다. 진원지인 해당 의원실은 '단순한 보좌관의 아이디어'라고 해명했지만 해당 기업 대관들의 전화와 방문이 쇄도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과거의 블랙리스트는 휴지통으로 향하고 새로운 블랙리스트는 만들어진다. 현재의 블랙리스트를 지우기 위해 또 다른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악순환을 이제는 버려야 할때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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