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앓아 지루해진 당신이 묻네, 언젠가 지금과 다른 생이 있겠냐고 강물은 당신의 발목을 향해 흐르고 두 갈래로 갈라지고 파문은 그곳에서 시작되는데 지금 묻고 있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묻는 사람 지금 슬픈 사람은 언제까지나 슬픔 사람 도저히 잊을 수 없어서 끝끝내 버릴 수도 없는 사람, 그 더운 이마에 얹으려고 차가운 강물에 손을 담그네 손을 따라 밀려오는 강물을 따라 번지는 빛을 따라 봄이 오겠지 참 아름다워 죽기 좋은 날이라고 하겠지 병이 아닌 꿈이 없다고 독이 아닌 숨이 없다고 눈을 감은 채 하는 질문은 가만하고 부드러운 것 실컷 어리석은 것 어리광처럼 초록이 간지러운 강가에서 따뜻한 입김에 기대고 싶겠지만 대답을 해야겠지 아니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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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그렇지 않다고, 혹은 정색을 하고 그렇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때 말이다. 가령 이혼한 친구가 찾아와 자기가 정말 잘못한 거냐면서 울 때 그럴 때, 아니라고 괜찮다고 등을 쓸어 줄 수도 있겠지만 '그래, 그러니까 이젠 그러지 마라'라고 냉정하게 말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아무 말 없이 그저 소주잔만 비우거나 버럭 화를 낼 수도 있고. 난 아직 어느 것이 정답인지 모른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매번 후회하거나 심지어는 고통스러워한다.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시를 쓴 시인도 그랬을 것이다. "오래 앓아" 이젠 삶도, 아니 살고자 하는 마음마저도 "지루해진 당신"의 질문에 무슨 말을 더 얹을 수 있겠는가. 당신은 다만 "언제까지나 묻는 사람"이고, '나'는 안타깝게도 미진하고 미안한 대답만 할 뿐이다. 그러니 저 냉담하다 못해 날카롭기까지 한 "아닙니다"라는 단호한 언사는 당신이 아니라 차라리 자기 자신을 향한 칼인 셈이다. 평생 가슴속에 품고 꺼내 들여다볼 때마다 자신의 피가 묻어 있을, 그러나 그렇게 해야지만 당신을 떠나보낼 수 있었던 정녕 그 한마디.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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