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이미 먹혔는데…中企 적합업종 뒷북 '눈물'
새정부 동반위 뒤늦은 합의 공표
시장잠식 고소작업대임대업 추가
대기업 점유율은 벌써 40% 넘어
이동통신유통협회도 상권보호 촉구
[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정동훈 기자] 뒤늦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은 영세 기업인들의 눈물을 닦아낼 수 없었다. 새 정부 들어 첫 적합업종으로 합의 공표된 직후 고소작업대 임대업체 대표의 첫마디는 "시장은 이미 기울어졌다"는 것이었다.
박상일 한국고소작업대임대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대기업 자본이 시장 깊숙이 침투해 잠식한 상태"라며 "동반성장위원회의 적합업종 지정만으로 중소기업이 보호받고 육성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동반위가 고소작업대 임대업을 적합업종으로 결정하고 기존 대기업의 확장 자제와 신규 대기업의 진입 자제를 권고했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한참이나 놓친 뒤였다. 새 정부 첫 적합업종 지정에 관심이 매우 높았지만 뒷북만 친 셈이다.
고소작업대는 공장ㆍ건설현장 등 높은 곳에서 일할 때 보조장치로 쓰인다. 건설현장에 주로 쓰이는 시저(가위)형 고소작업대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대부분 수입산이다.
◆적합업종 권고로 대기업 확장 못막어= 대규모 자본이나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지 않은 업종이다 보니 과거에는 각 지역에 기반을 둔 400여개 중소기업들이 경쟁하는 구조였다. 중소기업들은 500만원대의 해외 중고 장비를 들여와 한 달 평균 1대당 30만~35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수익이 있어도 장비 파손 위험이 큰 건설현장에 주로 투입되면서 보수ㆍ유지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고소작업대 임대업시장에 2000년대 후반부터 대기업이 잇따라 진입하며 중소기업의 설자리가 줄어들었다. AJ네트웍스, 한국렌탈, 롯데렌탈 등이 대표적이다. 조합에 따르면 자본력을 앞세운 '빅3'의 고소작업대 보유대수는 2014년 4000대 수준에서 지난해 2만대까지 늘어났다. 시장점유율은 40% 이상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권고로는 대기업의 확장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 신규 대기업의 시장 진입 자제가 권고되는 수준이고, 기존 대기업은 장비 보유대수를 14% 이내에서 확장할 수 있어서다. 박 이사장은 "장비 2만대를 보유한 대기업들은 한 해 2800대 이상 규모를 늘릴 수 있다는 계산"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동반위 관계자는 "14% 이내 확장 자제는 최근 5년간 대기업의 평균 성장률을 토대로 합의한 내용"이라며 "향후 대ㆍ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협의회'를 구성해 조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영역이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진출로 인한 골목상권 붕괴, 중소기업의 경영 악화를 막기 위해 제도를 만들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같은 역할을 한다.
동반위가 2011년부터 자율권고ㆍ합의로 운영하고 있다. 적합업종 지정 땐 대기업이 3년 동안 해당 업종에 시장 진입ㆍ확장을 자제하도록 돼 있다. 이후 재논의를 거쳐 3년간 연장할 수 있다.
◆제재 강제수단 없어, '무용론'= 하지만 중소기업계의 요구가 있더라도 공청회, 민간합의 과정을 거처야 해서 시간이 적잖이 소요된다. 또 민간자율합의라는 한계로 대기업이 이행하지 않더라도 이를 제재할 강제 수단도 없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무용론'이 대두되는 이유다.
박 이사장은 "2014년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주장했지만 이제서야 적합업종에 선정됐다"며 "이미 기울어진 시장이어서 아쉬움만 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반위에 적합업종 신청을 하고 지정이 되기를 원하는 중소기업 단체들이 매우 많다. 하지만 신청을 해도 지정 시기를 놓치거나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면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진다. 현재 적합업종 지정 73개 품목 중 47개 품목이 올해 9월부터 순차적으로 만기가 도래한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도 최근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입을 막기 위해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촉구했다.
KMDA에 따르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말기유통법) 시행 이전에 휴대폰 유통 종사자는 20만명, 점포수는 3만7000개에 달했지만 현재 유통 종사자와 점포수는 각각 6만명, 2만여개로 줄었다. SK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의 대리점뿐 아니라 롯데 하이마트, 삼성 디지털프라자, 각종 홈쇼핑까지 골목상권에 침투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적합업종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신속한 지정과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적합업종의 경우 현재 법적 근거가 취약해 실효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가 이뤄지면 보다 강력한 규제가 가능해진다. 법제화를 위해 발의된 특별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는 "기존 적합업종 제도는 신청 후 몇 년간 계류되는 등 진통을 겪다가 선정되면서 지정 시기를 놓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며 "적합업종 심사 시 보다 엄밀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 선정 절차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상익 법무법인 아인 변호사는 "현행 제도는 법적 강제력이 부족하다"며 "생계형 소기업 등의 생존율을 높이려면 적합업종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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